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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샬롬 조회 수: 3669
  • 하나님의부자학/ 스코트 앤더슨 ■책 소개 생활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부자학을 소개한 책.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실로 원하는 것은 가난한 삶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며 더불어 사는 삶'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이 책에서 크리스천의
2012-12-08 18:09:33 / 201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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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샬롬 조회 수: 4032
  • 목적이 이끄는 삶< The Purpose Driven Life> 릭 워렌 고성삼 역 2002, 도서출판 디모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4가지의 축복이 있다. 첫째, 죄를 용서받는 축복, 둘째, 마음의 평화 셋째, 하나님의 자녀로 살수 있는 능력 넷째, 삶의 진정한 목적을 아는 축복이다. 하나님은 나의 삶을 계획해 놓으셨으며 현재 이 책을 보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은 삶의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40일간의 영적 여정을 위한 안내서이다. 성경은 40일을 하나님이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간으로 여기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 노아의 삶은 40일 동안 내린 비로 변화 되었다. * 모세는 시내 산에서 보낸 40일 동안 변화 되었다. * 정탐꾼들은 약속의 땅을 40일 동안 바라보면서 변화 되었다. * 다윗은 골리앗의 40일 간의 도전으로 변화 되었다. * 엘리아는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고 40일 동안 그 기운이 남아 있는 것을 경험하고 변화 되었다. * 니느웨 온 도시는 하나님의 회개하도록 기회를 주신 40일 동안 변화 되었다. * 예수님은 40일간의 광야 생활을 통해 능력을 받으셨다. *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 40일을 함께 지내면서 변화 되었다. 이렇게 40일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의 삶도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1.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삶의 목적이란 우리 개인의 성취감, 마음의 편안과 행복감 이상의 것이며 가족, 직업 그리고 우리의 가장 큰 꿈과 야망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삶의 목적에 대해 사람들은 혼란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그러한 고민들의 출발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로 자기중심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결코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없다. 욥기 12:10 에서 ‘생물들의 혼과 인생들의 영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지 우리의 목적을 위해 그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목적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일종의 자기 지침서들은 공통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주제에 접근한다. 성공한다는 것과 삶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것은 절대 같지 않다. 개인적인 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세상의 기준에 따라 엄청난 성공을 이룬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놓칠 수 있다. 이 책은 자기 치침서가 아닌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줌으로 우리의 삶에서 일을 적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그 답은 추리하는 것 외에 한 가지 대안이 더 있는데 바로 계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궁금해 하면서 추측하도록 어둠 속에 두지 않으신다. 성경에는 우리 삶의 다섯 가지 목적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근원이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어떤 소망을 갖기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눈여겨보셨고 만물과 만인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목적의 한 부분으로서의 영광스러운 삶을 이미 계획해 놓으셨다. 1.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2.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기 훨씬 이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생각해 오셨다. 3.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이 영원을 위해 계획해 놓으신 보다 큰 목적의 한 부분이다. 이 책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2.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우리의 출생은 부모님이 우리라는 생명체를 만들기 훨씬 이 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마음속에 품으시어 우리의 존재를 제일 먼저 생각하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지금 숨쉬고 있다는 사실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의미 없는 운명도 우연의 결과도 아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 지라“(시편 138:8)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해 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출생과 죽음의 시기도 이미 결정해 놓으셨다. “그가 땅의 기반을 마련하기 훨씬 이전에 그는 우리를 계획하셨고 우리를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정해 놓으셨다.”(에베소서 1:4)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좆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서 1:18) 하나님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만이 우리 삶 속에서 그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3. 삶의 원동력 모든 사람은 무엇에 이끌리어 살고 있다. 이끌다(drive)라는 동사는 ‘길을 인도하다, 통치하다, 방향을 제시하다’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가장 보편적인 것을 몇 가지만 들어보면, 많은 사람이 죄의식, 분노, 두려움, 물질,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하여 끌려 다닌다. 이러한 것은 이유 없는 행사들의 끊임없는 연속일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목적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목적을 모르는 삶을 보상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목적에 이끄는 삶에 따르는 유익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우리의 삶이 단순해지며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되고 삶의 동기가 유발되며 영생을 준비할 수 있다. 목적을 따라 사는 것은 평화로 가는 길이다. 4. 영원히 존재하도록 지어졌다. 현재의 삶이 존재의 전부는 아니다. 지구위에 산다는 것은 영원한 삶을 살기위한 예비 학교이며 실전을 갖기 전의 연습이며 다음 삶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우리 안에는 영원한 삶을 바라는 본능이 있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디에서 영생을 보낼 것인지가 결정된다. 영원의 빛 가운데에 살면 우리의 가치관이 변한다. 시간과 돈, 명예나 부, 또는 일의 성취감이나 쾌락보다는 인간관계와 인격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된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알게 된다. 땅에서 하는 모든 행위에는 영원한 결과가 따른다. 우리 삶에서 이루어진 모든 행동이 영생에서도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의 삶, 그 이상의 것이 있다. 5.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우리의 삶을 만든다.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 땅에서의 삶은 시험이다. 인격은 시험에 의해서 개발되고 다듬어 진다. 삶의 모든 영역이 시험이다. 삶이 시험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위탁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돌보고 관리하도록 잠시 맡기신 것이다. 이 땅의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며 우리는 잠시 머무는 동안 청지기로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에게 이 지구를 잠시 빌려주신 것이다.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소유한 것을 잠시 동안 즐기고 사용할 뿐이다. 당신이 가진 것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면 스스로 이루지 않은 것들에 대해 왜 자랑을 하는가?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돌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실수록 그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신다. 삶은 시험이고 위탁받은 것이다. 6.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지구상에서의 삶은 일시적인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림자만큼이나 순간적이다. 영생에 비해 이 땅에서의 삶은 지극히 짧은 것이고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이다. 외국에서 잠시 사는 것과 같다. 우리의 정체성은 영생에 있고 우리의 모국은 천국 이다.이 땅은 우리 집이 아니며 우리는 나그네와 행인과 같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깨달음은 우리의 가치관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우리가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집으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니다. 7.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하여 존재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감으로,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하나님에 대해 말함으로 영광을 돌린다.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일단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면 당신을 위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한 것이다. 첫 번째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8.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은 우리 삶의 첫 번째 목적이다. 이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면 우리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을 ‘예배’라고 부른다. 어느 문화권에서 살든지 본능적으로 무엇 인가를 섬긴다는 것을 알았다. 신적인 존재와 연결되고 싶은 것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면 하나님 외의 대체물을 찾게 되고 그 대체물이 심지어는 우리 자신이 되기도 한다. 예배는 삶의 방식 그 자체이다. 예배는 음악이상의 것이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며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나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9.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첫 번째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 또한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가장 사랑할 때, 그를 온전히 신회 할 때, 우리가 마음을 다해 순종할 때, 계속해서 우리가 당신을 창양하고 감사드릴 때, 우리가 능력을 사용할 때 , 내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미소를 지으신다. 10. 예배의 중심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 드렸을 때 가능하다. 신뢰는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 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의 주요 요소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전에는 그분을 신뢰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더 많이 항복할수록 우리는 더 진정한 우리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창조하셨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내 자신을 그분의 인격으로 채울 때에야 비로소 나는 진정한 내 인격을 갖기 시작한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내어 드릴 때 우리는 평화, 자유, 능력을 경험한다. 모든 사람은 결국 어떤 것엔가 또는 누구에겐가 항복한다. 하나님께 삶을 드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삶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예배의 중심은 항복이다. 11. 하나님의 좋은 친구 되기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은 더욱 확실하다.(로마서 5:10) 우리는 하나님의 계속적인 임재 가운데서 살도록 만들어졌지만 타락한 이후 그 이상적인 관계가 사라지게 되었고, 구약 시대에는 몇 명만이 하나님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상황을 바꾸어 놓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을 때 성전에 드리워졌던 사람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던 휘장이 위에서 찢어졌다. 이것은 사람이 다시 한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만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의식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될 수 있다. 하나님과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이다. 어려운 말을 사용한 긴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하루 동안 계속 짧은 대화와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정을 맺는 두 번째 방법은 하루 종일 그분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묵상이라 하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시고, 무슨 일을 하셨으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 묵상할 것을 계속해서 권고한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대하여 하루 종일 생각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우리와 나누실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기를 원하신다. 12. 하나님과의 우정을 키워가기 우리는 노력하는 만큼 하나님께 가까워질 수 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들에게 당신의 우정을 나타내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해야 한다. 완벽함을 원하지 않으시고 정직함을 원하신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분의 백성을 되찾는 일이다. 잃어버린 모든 자녀들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우정을 소망해야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 1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가 정확할 때, 진실할 때, 사려 깊게 예배드릴 때, 우리의 예배가 현실적일 때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전부를 원하신다. 14.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이 멀리 느껴지며 영적인 슬럼프에 빠지는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주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시험과 성숙을 위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최소한 한 번 씩 그리고 보통은 여러 번 이런 과정을 겪게 된다. 고통이 있고 당황스럽지만 우리의 믿음이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욥은 이 사실을 알고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에도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기 23:8-10)는 말씀과 같이 소망을 가졌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감정과 멀리 느껴지는 감정은 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하는 믿음에 대한 시험, 즉 “내가 그분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거나, 내 삶에 그분의 역사하심의 가시적인 증거가 없을 때에도 나는 계속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배드릴 수 있을까?” 와 같은 시험인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오늘날 예배에서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하나님보다 경험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모두 털어 놓고 감정을 모두 쏟아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의심, 분노, 두려움, 슬픔, 혼란 그리고 궁금증들을 모두 감당하실 수 있다. 욥은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느꼈을 때 “ 저는 조용히 있을 수 없습니다. 전 화가 났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말을 해야겠습니다!”(욥기 7:11) “내 생애에 있어서 최고의 시절 하나님과의 우정이 내 집안을 축복했던 그날이 돌아올 수 있었으면”이라고 외쳤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창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 하나님은 선하시며 사랑이 많으시다.(욥기 10:12) * 전능하시다(욥기 37:5,23, 42:2) * 내 삶의 모든 구체적인 부분까지 아신다(욥기 23:10,31:4) * 모든 것을 통제하신다(욥기 34:13) * 내 삶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욥기23:14) *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욥기 19:25) 하나님에 버림받았다고 느끼지만 그런 우리의 감정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계속 신뢰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깊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기억해야한다. 내가 어떻게 느끼든지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신다. 두 번째 목적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15.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하나님은 가족을 원하시고 우리가 가족이 되도록 우리를 만드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갖고 계시는 두 번째 목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신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그분의 본성이시다. 하나님은 항상 스스로 사랑하는 관계 안에 존재해 오셨기 때문에 절대 외롭지 않으시다. 우리의 영적인 가족은 혈육관계의 가족보다 더 중요한데 그것은 영적인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유익은 가족의 이름, 특권, 친밀한 관계, 유산을 받는다. 또한 그의 가족원이 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믿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함께 동참함으로 옛 삶이 죽었음을 나타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살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의식이다. 가장 위대한 삶의 특권이고 내가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일이다. 16. 가장 중요한 것 삶은 사랑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배우기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떻게 사랑하느냐이다.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과 가장 닮아갈 수 있고, 그래서 사랑은 그분이 내린 모든 명령의 근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을 잘 사용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 하나님은 인간관계가 우리 삶의 전부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은 영원하며 우리는 사랑으로 평가를 받는다. 사랑의 가장 좋은 표현은 시간이며 사랑하기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 즉 삶은 사랑이다. 17.우리가 있어야 할 곳 우리는 믿어야 할 뿐 아니라 어느 곳에 속해야한다. 성경은 외딴 곳에서 홀로 지내는 성인들 또는 믿는 사람으로부터 고립되어 교제를 하지 않는 영적인 은둔자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에게 속한다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통하여 우리의 역할을 발견한다. 홀로 존재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몸에서 분리되면 공급을 받지 못하여 영적인 삶은 시들기 시작하고 무력해 지거나 완전히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화인 독립적인 개인주의는 많은 영적인 고아들, ‘떠돌아다니는 믿는 자들’을 만들어 냈다. 성경은 우리가 교회에 꼭 헌신하고 교제해야 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고 있다. 교회 가족은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임을 증명해 준다. 교회 가족은 우리를 자기중심적인 고립에서 건져준다. 교회 가족은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를 필요로 하여 세계 전역에 걸쳐서 그리스도의 일에 동참하게 된다. 교회 가족은 타락의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 준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 가지고 계신 다섯 가지 목적은 우리의 삶에 대해 가기고 계신 목적과 일치한다. 모든 아이는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인류라는 공통된 가족이 되었다. 그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특정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 듯이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하나님의 큰 가족이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그 가족의 실제 모습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한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의 차이는 헌신의 정도이다. 구성원은 참여자이고 기여자이며 책임을 공유하는 자로써 부부가 동거가 아닌 결혼을 통하여 헌신하기로 한 것과 같다. 나는 믿어야 할 뿐 아니라 교회에 속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18. 삶을 함께 경험하기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삶을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성경은 이러한 공유된 경험을 교제라고 부른다. 진정한 교제에서는 사람들이 진실함을 기대한다. 우리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할 때만이 우리는 진정한 교제를 경함할 수 있다. 진정한 교제를 통하여 사람들은 공감하며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 해 주고 이해해 줄 때마다 우리는 교제를 쌓아가는 것이다. 진정한 교제를 통하여 사람들은 자비를 경험한다. 내 삶에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19. 공동체 가꾸기 공동체는 헌신을 필요로 한다. 성령만이 믿는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교제를 가능하게 하지만, 성령은 우리의 선택과 헌신을 사용해서 역사하신다. 공동체를 가꾸려면 정직, 겸손 공손, 비밀을 지키고, 자주 만나며 무엇보다 절대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20.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 관계들은 항상 회복할 만한 가치가 있다. 삶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불화나 상처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보다는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원하신다. 관계를 회복하는 법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야기하라. 항상 먼저 다가가라.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라. 너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하라.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하라. 할 수 있는 한 협력하라. 해결이 아닌 화해를 강조하라. 21. 교회를 보호하기 교회의 하나 됨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교회의 하나 됨이란 신약 성경에서 천국이나 지옥에 관한 얘기보다도 더 많이 언급될 만큼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하나 됨과 조화를 경함하기를 원하신다. 세상에서 교회보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은 없다. 서로의 차이보다는 공유한 것에 초점을 맞추며 현실적이 기대를 갖고, 비판하기 보다는 격려하며, 험담을 귀담아 듣지 말고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익히고 목사와 지도자들을 지지해주고 우리를 영적으로 인도하고 섬기는 사람들을 존경하면서 우리는 교회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세 번째 목적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22.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당신의 아들 예수님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우리 삶의 세 번째 목적이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신 궁극적인 목적이 편안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을 위해 우리의 인격을 쌓고 강화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우리의 안에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만드는 것은 성령의 일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 당신의 말씀, 사람들 그리고 상황을 이용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는 어떤 사람인지에 더 관심을 두신다. 23. 성장하는 방법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가지고 계신 목표는 우리가 성숙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갖는 것이고, 사랑과 겸손한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헌신 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달라진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이행하는데 성령의 도움을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뒤에는 우리의 생각이 있다. 모든 행동에는 믿음에 따른 동기 부여가 있고 모든 행위는 태도에 의해 유발된다. 우리의 사고방식은 느낌을 결정짓고 우리의 느낌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성장하기에 늦은 때는 없다. 24. 진리로 인한 변화 진리는 우리를 변화 시킨다. 영적인 성장은 거짓을 진리로 대체시키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만드신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며 진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 성경을 매일 읽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범위 안에 머물게 된다. 25. 어려움으로 인한 변화 모든 문제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그 분은 우리의 성품을 개발시키시려고 상황을 이용하신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만드시려고 성경보다 상황을 더 많이 사용하신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는 우리가 하루 24시간 동안 어떤 상황이든 상황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한 가장 깊고 친밀한 예배는 아마 가장 힘든 때 드린 예배 일 것이다. 겉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겪는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방법으로 대처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선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포기하지 말며 모든 문제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자. 26. 시험을 통해 성장하기 영적으로 성숙해 가는 동안, 모든 시험들이 잘못된 일을 할 만큼 옳은 일을 할 수도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는 다면 그것은 걸림돌보다는 성장의 발판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하고 성령의 열매와 정반대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을 경험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시험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사탄이 하는 일은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 도움이 된다. 그는 태초부터 같은 전략과 낡은 속임수를 사용하여 왔다. 우리 안에 욕구를 일으키고, 의심을 하게하며, 거짓을 말하며 불순종을 요구한다. 이러한 사탄의 시험을 이기기 위하여 두려워하지 말며 무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우리가 약하거나 세상적 이어서가 아니라, 사탄이 우리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수록 사탄은 우리를 더 시험할 것이다. 이럴 때는 시험의 양상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비 하여야 한다. 천국에 24시간 응급 전화가 설치되어 있으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이렇게 하므로 모든 시험은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로 사용될 수가 있다. 27. 시험을 이겨내기 항상 빠져 나갈 길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가끔 이길 수 없을 만큼 시험이 너무 강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것은 주지 않는다고 약속하셨다. 성경 그 어디에도 ‘시험에 맞서라’는 구절이 없다. 머리에서 무슨 생각을 없애려고 할 때마다 그것은 더 깊이 우리의 기억에 박힐 것이다. 유혹은 항상 생각에서부터 오기 때문에 그것을 가장 빨리 중단하는 방법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죄에 대한 전쟁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 승패가 갈린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승리를 할 것이다. 만일 시험을 이기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마음을 다스리고 미디어를 통해 무엇을 보고 듣는지 스스로 감시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우리에게 마음을 지키라고,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좋은 크리스천 친구나 도와줄 수 있는 그룹과 문제를 나누고 악에 대항하며 약점을 깨달으므로 항상 피할 길은 있기 마련이다. 28. 시간이 필요하다. 성숙을 위한 지름길이란 없다. 성인이 되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리는 일이고 과일도 자라서 열매를 맺기에는 한 계절이 걸린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의 개발도 한꺼번에 이루어 질 수 없다. 영적인 성장은 육체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얼마나 빨리 자랄 것인가를 걱정하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강하게 자랄 것인가를 걱정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즉시 변화 시키실 수도 있지만 천천히 발전시키는 방법을 택하셨다. 우리는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우리에게는 잊어야 할 것이 많다. 우리는 자신에 대한 진실을 겸손히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성장하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러우며 습관이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비록 느끼지 못할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배운 교훈에 대해 메모를 해 놓거나 일기를 쓰며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성숙을 위한 지름길은 없다. 네 번째 목적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 받았다. 29. 사명을 받아들이기 우리는 자원을 소비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기여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을 섬기고자 구원받았다. 만약 내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싶은 마음도 없다면 예수님이 내 삶 속에서 계시는 것인가 반문해 보아야만 한다. 섬김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30.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금의 모습으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은 지구상의 모든 피조물을 만드실 때 저마다 특별한 재능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모습을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그 목적을 위해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도 계획하셨다. 하나님은 절대로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모양으로 지으셨는가?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주시던지 그것을 완수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주신다. 이런 맞춤형 조합을 'SHAPE'이라고 말할 수 있다. S;영적인 은사, H:마음, A:능력, P:성격, E:경험 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은사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영적인 은사를 주셨다. 성경은 마음을 우리가 바라는 것, 희망, 관심, 포부, 꿈, 사랑하는 것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는 것의 특징은 열심과 효율성이다. 즐기지 않거나 열정 없이 일할 때 성공하는 예가 거의 없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관심을 사용해 당신과 다른 사람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31. 내 모습을 이해하기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만드시되 이 세상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없게 하셨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 놓으신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능력이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천부적인 재능이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사용하시는 여러 가지 능력의 예를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능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 질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자신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독특한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다양성을 좋아하는 분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성격유형을 사용하시고 있는 많은 증거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베드로는 다혈질이고, 바울은 담즙질형, 에레미아는 우울질형 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격과 잘 맞추어서 사역할 때, 우리는 성취감과 만족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삶의 경험들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고, 이 경험들 가운데 대부분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습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한 경험들을 우리의 삶에 허락하셨다. 가족경험, 교육경험, 직업경험, 영적 경험, 사역경험, 고통스러운 경험 등이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위해 사역하게 하실 때 우리의 삶 속에서 원망과 후회의 경험, 숨기고 싶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경험과 같은 모든 경험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사용하시도록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그것들을 나누어야만 한다. 그 어떤 누구도 내가 될 수 없다. 32. 하나님이 주신 모습으로 섬기기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것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그분은 목적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가 받은 것을 최대한 활용하기를 원하신다. 그 분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을 탐내거나 그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당신이 사용하도록 주신 재능에 집중하기를 바라신다.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고 영적인 은사와 타고난 능력을 평가하라. 어디서 봉사를 해보기 전에는 그 재능을 발견하려고 하지 말라. 해보지 않고는 무엇을 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과 성격에 대해 주의 깊게 검토하라. 자신의 경험을 점검하고 그것에서 배운 교훈을 끌어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모습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이 주신 모습을 즐기기를 원하신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용납하고 즐겨라.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께 받은 것을 극대화시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로 말씀하셨다. 자신의 모습을 계속 개발하라. 하나님은 나의 최고의 것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33. 진실한 종의 행동 지침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흔히 우리는 위대함을 권력, 소유물, 명성, 지위의 측면에서 정의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대함을 신분이 아닌 섬김의 잣대로 측정하신다. 하나님의 위대함은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얼마나 섬기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섬겼느냐에 따라 결정하신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는 너무나 상반된 것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은 물론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사역을 보여주지만 종의 마음은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보여 준다. 진실한 종은 자신을 섬기기 위해 내어주고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며 모든 일에 대해 똑 같은 헌신을 한다. 위대한 일들은 때때로 조그마한 일들로 위장되어 있다. 진실한 종은 그들의 사역에 충실하며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34. 종의 마음으로 생각하기 종이 되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인 전환과 태도의 변화를 요구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보다는 왜 하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진실한 종은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한다. 진실한 종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내어 드린다. 진실한 종은 주인이 아닌 청지기 같이 생각하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그리스도 안에 정체성을 두고 사역을 의무가 아닌 기회로 생각한다. 종이 되기 위해서는 종의 마음으로 생각하여야 한다. 35. 약함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은 약한 사람을 사용하기 좋아 하신다. 모든 사람에게는 약점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강점만을 사용하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약점까지도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싶어 하신다. 만약 하나님이 완벽한 사람들만을 쓰셨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약점’ 바울이 부르는 ‘가시’라는 것은 죄도 악도 아니다. 약점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거나 바꿀 힘이 없는 한계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들로 제한되지 않으신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라. 모두 갖추고 있는 체하지 말고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지라. 부인하거나 핑계 대는 대신에, 자신의 약점들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라. 목록을 만들 수도 있다. 자신의 약점에 대해 만족해하라. 약점은 우리가 거만해지지 않게 막아 준다. 겸손을 잃지 않게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약점은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과 사역의 포용력을 크게 증가시킨다. 가장 효과적인 사역은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에서 나온다.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나누라. 사역은 약점에서 시작된다. 방어 막을 거둘수록, 가면을 벗고 아픔을 나눌수록,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더 많이 사용하실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스럽게 여기라.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 강점을 약점으로 바꾸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약함을 인정할 때 가장 크게 역사하신다. 다섯 번째 목적 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 36.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에서 역사하고 계시고 또한 우리가 당신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이 과제를 우리의 사명(Mission)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사명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오라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위해 가라고 말씀하신다. 지상 명령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위대한 특권이고 영원한 삶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영원한 중요성을 갖으며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역사의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가 사명을 완수하는 곳과 연결된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의 목표를 버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 들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헌신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할 것이다. 37. 삶의 메시지 나누기 하나님은 우리 안에 다른 사람들과 나눌 삶의 메시지를 담으셨다. 당신은 나눌 것이 없다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당신이 전하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속임이다. 삶의 메시지는 간증을 담는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으로 찾아가실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한다. 삶의 메시지는 삶의 교훈을 담으며 우리가 나누는 거룩한 열정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열정을 주신다. 그래서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을 이루실 것이다. 삶의 메시지는 복음을 담으며 하나님은 나를 통해 세상에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하신다. 38. 월드 크리스천 되기 지상 명령은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적인 크리스천이 될 수도 있고 세계적인 크리스천이 될 수도 있다. 세상적인 크리스천이란 자기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이다. 그들은 구원은 받았지만 자기중심적이다. 나 우선 적인 믿음이다. 반대로 월드 크리스천들은 섬기기 위해서 구원을 받았고 이 땅에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임무를 주시리라 간절히 바라고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흥분한다. 전 세계로 가야하는 우리의 임무를 수행하기가 이처럼 쉬웠던 적이 없다. 지역적인 사고에서 전 세계를 품는 사고로, 지금 여기만 바라보는 사고에서 영원을 바라보는 사고로, 핑계거리를 찾는 대신 사명을 완수할 창조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사고로 우리의 관점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39. 삶의 균형 잡기 1. 마음을 다 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2.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3.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5.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위의 다섯 가지 목록이 균형을 이룰 때에 영적인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 목적에 이끄는 삶의 원칙들을 내면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적인 동역자나 소그룹에서 이야기 하여 영적인 정기 검진을 받고 자신의 발전 과정을 일기에 적어 우리를 이 땅에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도록 어떻게 도우셨는지에 대한 간증을 보전해서 다음 세대에 전해줄 책임이 있다. 이렇게 하므로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 할 수 있다. 균형을 잡고 사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40.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된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세 가지 기본적인 문제로 고민한다. 첫째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둘째로는 ‘내가 과연 중요한 존재인가?’라는 중요성의 문제와 셋째 ‘삶에서의 나의 위치는 무엇인가?’라는 영향력의 문제이다. 이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가지고 계신 다섯 가지 목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삶의 목적 선언서’를 작성하고 그것을 정기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삶의 목적 선언서란 무엇인가?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요약해주며, 삶의 방향을 가리켜주고 성공에 대한 정의를 내려주며 우리의 역할을 명확히 해주며 우리의 모습을 표현해준다. 삶의 5가지 중요한 질문 1. 내 삶의 중심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하나님이 그 중심에 계시면 우리는 그분을 예배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걱정하게 된다. 하나님을 다시 중심에 모시는 순간 우리는 다시 평안을 찾을 것이다. 2. 나는 어떤 성품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제자도와 관련된 문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더 많은 관심을 두신다. 3. 내 삶을 어디에 기여해야 하는가? 이것은 섬김의 문제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 도록 지음받기는 했지만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지는 못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모습에 기초해서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야 한다. 우리는 각각 다른 열매를 맺고 있다. 4. 내 삶은 어떤 전달 도구가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선교에 대 한 질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 믿을 만한가를 보기 전에 우리가 믿을 만 한가 를 알고 싶어 한다. 5. 내 삶의 동역자는 누구인가? 이것은 교제에 관한 문제이다. 다른 크리스천들에 대한 나 의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가족과의 연결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어떤 교회에서 우리에 게 준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성숙하면 할수록 우리는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 원 하신다.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참된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지도자의 삶을 위한 지도자의 가장 본질적인 자질은 완벽함이 아니라 신뢰성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 할 수 있어야 우리를 따를 것이다. 신뢰는 완벽한 체 하지 말고 정직해야 한다.
2012-12-07 01:03:29 / 201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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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샬롬 조회 수: 37799
  • 조이 도우슨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조이 도우슨 지음/방원선 옮김 예수전도단/2002년 1월/210쪽/6,500원 ▣ 저 자 조이 도우슨 베스트셀러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이어 「스릴 있고 성취감 넘치는 중보기도」가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몇 명의 기도 동역자들과 함께 정기적인 기도의 삶을 살던 중 하나님의 뜻을 좇아 본격적인 사역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국제 예수전도단의 훈련학교들을 비롯, 전 대륙 43개국을 두루 다니며 역동적인 말씀을 전하는 국제적인 성경교사로 섬기게 되면서, 몇 년 전부터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도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녀의 중보기도는 예언적인 중보자로서의 기름부으심이 있다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그녀가 강의한 '효과적인 중보기도를 위한 10가지 원칙들'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중보기도의 지침으로서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현재 국제 YWAM(Youth With A Mission)의 스탭으로 있다. ▣ 역 자 방원선 1981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귀국 후 잠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 그녀는 현재 평신도 사역과 함께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과천 새서울 교회에서 지휘자로 섬기고 있다. ▣ Short Summary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것을 자연스러운 생활의 하나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적인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하는 조이 도우슨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아 나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온전히 성취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또 그녀는 하나님을 특별한 분, 매혹적인 분, 흥미진진한 분, 신비로운 분이면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가까운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성경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열쇠가 하나님이 우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사용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을 잘 알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즉 저자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이 아닌 것을 분별해 낼 수 있는지, 하나님의 응답의 때와 그 방법은 무엇인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필수적인 태도와 자세는 어떤 것인지를 독자에게 이 책에서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 ▣ 차 례 제1장 모든 사람의 특권 제2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조건 제3장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24가지 방법 제4장 하나님이 응답을 늦추시는 이유와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 제5장 음성 듣기에 대한 경고 : 속이는 영과 추측의 문제 제6장 순종, 음성 듣기의 열쇠 제7장 당신의 모범은 누구인가? 부록 예수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려면 제1장 모든 사람의 특권 하나님은 우리와 친구처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기도 하시고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기도 하시는 것은 처음부터 하늘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성경 이외에 개인적으로 듣는 것에 대해 소위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조차 괴상하게 여기는 것을 보면 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토록 다양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기대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는 사실이 훨씬 더 괴상한데 말이다. 그의 양은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음성을 알며 그를 따른다고(요 10:3~4, 27)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양은 단순하다. 전혀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림으로써 다시 태어나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즉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가 만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여전히 주인과 종의 관계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명령받을 것만을 기대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예레미야 10장 23절에는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고 씌어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면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좋은 소식이 있다. “사람의 걸음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잠 20:24)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최선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측량할 수 없는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와 대화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분이 우리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안심되는 일인가. 우리는 단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하셨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담당하려면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삶의 한 부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 8:47),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 18:37). 이 두 말씀은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해 주고 있다. 특히 두 번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100퍼센트 진실되기만 하다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을 수 있음을 약속하고 있다. 제2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조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우리의 가장 큰 필요 중 하나는 ‘겸손함’을 입으며 겸손함 안에서 걸어가되 점점 더 깊은 단계까지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할 때 겸손함이 없이는 아무런 진보도 있을 수 없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 25:9).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 즉”(시 53:2). 또한 겸손의 모본이 되신 예수님께서도 크든 작든 모든 문제를 갖고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 5:19). ‘믿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두 번째 필요 조건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하는데, 그 믿음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신 33:3).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 48:14).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사 30:21).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게 하는 것’이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우리는 잠잠히 있어 주께서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실 시간을 드려야 한다. 때때로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삶 가운데 다루어지지 않은 죄 때문일 수 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 앞에서 정직하지 않았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거절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네 번째 조건은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모심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을 때에야 비로소 그분은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포기했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하시는가를 결정한다. 자신의 의지를 포기한다는 것은,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성경적인 원칙들을 따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조건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께 말씀하실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되 우리의 관심의 초점을 우리의 문제가 아닌 그분께 맞추도록 해야 한다. 우리 문제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은 무엇이든 말씀하실 수 있는 시간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여섯 번째 조건은 ‘우리 마음 가운데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 근원지에 대해 인식하고 분별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두 번째는 자기 자신의 음성이며, 세 번째는 사탄의 음성이다. 성경은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자기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잠 28:2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또한 사탄도 우리 마음 가운데 어떤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사탄의 목소리는 강하고 급하며 강요한다. 사탄은 늘 어떤 위기 상황으로 우리를 몰고 가서는 우리로 어떤 행동을 급히 하도록 만든다. 반면 하나님의 음성은 조용하지만 일관성이 있고, 우리에게 잠시 물러나 조용히 기다리며 듣도록 권면한다. 제3장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24가지 방법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있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의사소통을 하시기 위해 선택한 방법들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일은 평생을 해온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평범한 것이 없었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한 목록이다. ①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 성경 말씀이 책 속에 있을 때 ․ 설교나 가르침, 간증이나 찬양 가운데 말씀이 인용될 때 ․ 믿을 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나 목회자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개인이나 단체에게 특정한 말씀을 주도록 인도될 때 ․ 묵상하는 중에 성령께서 계시해 주실 때 ․ 성경말씀이 게시판에 적혀 있을 때 ․ 성경을 가끔씩이지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자 하는 진정한 소원을 갖고 읽는 사람들에게 ․ 암송되어진 성경말씀을 통해 ② 하나님은 우리가 보는 것을 통해 말씀하신다. ․환상/꿈/천사/손가락으로 쓰심/무지개/창조/불기둥과 구름기둥/소멸하는 불/초자연적인 표적/환경/ 우림과 둠밈/제비 뽑기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욥 33:14~18) ③ 하나님은 듣는 것을 통해 말씀하신다. ․마음속에 들리는 음성 ․귀로 들을 수 있는 음성 ․성령의 은사(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 통역) ․음악과 시 ․다른 사람 ․동물의 왕국 ․간증 ④ 하나님은 우리 영이 받은 인상을 통해 말씀하신다. ․강한 확신과 평강 ․성령의 촉구 ․성령의 제지 ․하나님의 만지심 ․인상이나 느낌 제4장 하나님이 응답을 늦추시는 이유와 우리를 시험하시는 목적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질문을 간단하게 하되, 한 번에 한 가지 씩 여쭈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혼란이 온다. 이는 하나님께서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다룰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각 질문에 대한 응답들이 서로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응답하시기 전에 우리가 그 질문들을 떼어 놓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이 응답을 늦추시는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① 가장 먼저는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좋은 질문이기는 하나 올바른 때에 물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② 만일 아직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혹시 당신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먼저 응답하고 싶으신 더 중요한 일이 있지는 않은지 그분께 물어볼 필요가 있다. ③ 혹은 하나님께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④ 당신의 삶 가운데 혹시 불순종한 것이 있는지 하나님께서 밝혀 주시도록 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전에 우리에게 명하신 것에 대해 우리가 순종했는지 확인하신다. ⑤ 또한 우리가 우리 위에 세우신 권위로부터 이탈하여 있고, 그래서 그 질문을 묻는 것이 우리의 권한을 넘어선 것일 수도 있다. ⑥ 아니면 지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경우일 수 있다. ⑦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당신이 지정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시기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라. 듣기를 원하는 방법을 요청할 수 있다. ⑧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말씀하실 수 있을 때까지 응답을 늦추실 수 있다. ⑨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잠잠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려 그분이 정확한 시간에 응답해 주실 것을 신뢰하라. 그분은 절대로 너무 늦지 않으신다. ⑩ 어떤 경우 하나님께서는 당사자가 아닌 그들 위에 세운 지도자에게 먼저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⑪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날마다 묵상하고 있는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데, 우리가 아직 그 특정 부분까지 읽지 못했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계속 읽으라. 응답은 지금 오고 있다. ⑫ 팀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구할 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 팀의 어떤 사람에게는 응답을 주지 않으실 수 있다. 첫째,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자주, 그리고 분명히 듣는 것 때문에 교만해져 있고, 이러한 문제가 다뤄지지 않았을 때 둘째, 그 사람에게는 응답을 주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응답해 주심으로써 그 팀의 다른 사람들을 특별히 격려하시기를 원하실 때 셋째, 우리 각자를 낮추시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넷째, 그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갖도록 할 목적으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을 의뢰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이다.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께 구하며 모든 조건을 다 만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묻기를 그치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리라.”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지는 것 때문에 혼란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시 7:9). 제5장 음성 듣기에 대한 경고: 속이는 영과 추측의 문제 우리는 어떻게 속아넘어가는가? 하나님은 이 질문에 한 가지로 분명한 대답을 하고 계신다.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교만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속이는 영에 묶이는 모든 경우 그 밑에는 교만이 있다. 사탄의 세력들은 당신이 진리대로 살게 될 때 반드시 경험하게 될 삶의 변화로 인해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를 교만해지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공격 방법이다. 상하고 회개한 심령을 가질 때 사탄은 물러가게 되므로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보여 달라고 해야 한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밝혀 주실 수 있다. 다루어지지 않은 죄는 어떠한 것이든 대적들로 하여금 우리를 자주 공격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 있어 계속 죄를 범한다면 우리는 그 영역에서 사탄의 세력에 묶이게 된다. 우리가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속이는 영으로 끝을 맺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 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신다. 또한 사탄의 세력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질서를 떠나 자기 생각으로 추측하며 행동하도록 유혹하며, 성경의 의미를 왜곡시켜 우리로 진리와는 정반대의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들을 해봄으로써 이러한 것들을 점검해볼 수 있다. ① 성경에 그대로 적혀 있는가? ②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는가? ③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품 및 방법과 조화를 이루는가? 하나님은 절대 다음과 같은 일을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① 거룩하지 않은 방법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 ② 사랑 없이 하는 일 ③ 삶의 동반자나 가족들의 사랑을 감소시키는 일 ④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일을 방해하는 일 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부담감을 감소시키는 일 ⑥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부분들로부터 스스로 격리시키는 일 ⑦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 ⑧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갖도록 하는 일 우리는 때로 어떤 인도하심을 해석하는 데 있어 추측으로 했을 수도 있고, 하나님께 명확한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인간적인 생각으로 했을 수도 있다. 처음에 받은 것들이 뭔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면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 맞았다면 확증을, 잘못되었다면 교정을 부탁하라. 그리고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밝혀 주시는 대로 순종하라. 혹시 우리의 불신앙이나 불평, 두려움, 불순종이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우리의 삶을 자세히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처음 말씀하셨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받은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 간의 문제다. 제6장 순종, 음성 듣기의 열쇠 하나님께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고, 따라서 그분의 음성을 더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다. 순종을 지체하는 것이나 부분적인 순종, 불평하며 순종하는 것은 불순종이다.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 “모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즉각적으로, 온전히, 기쁨으로 순종할 때에만 일어난다. 한번 믿어보라. 정말 이 일은 인류에게 알려진 것 중 가장 위대한 모험이다. 가장 도전적이며, 가장 흥미진진하고, 그 보상이 가장 크고, 또한 가장 성취감 넘치는 모험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작은 일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지식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분께 순종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 가운데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라갈 수 있도록 그 동기를 부여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되 그분께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드리지 않고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다거나 혹은 영생을 얻으리라고 자신을 속여서는 절대 안 된다. 뉴질랜드에 사는 70세의 노부인은 어느 날, 그 날의 성경 읽기를 하다가 산으로 가서 기다리라는 성경 구절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이 구절을 깊이 묵상했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계속 성경을 읽어 나갔다. 그러자 하나님의 평강이 자신을 떠난 것을 즉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평강이 성령의 임재의 표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되돌아가서 그 구절을 다시 읽었다. 그러자 곧 평강이 찾아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주어졌다. 그 부인은 하나님께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 것인지 물었다. “어떤 산이요?” 즉시 ‘테 아로하’란 산 이 영 가운데 떠올랐다. 이 산은 그녀의 집에서 3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근처 동네까지 걸어가서는 그 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러면서도 문득 그녀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그녀가 그 높은 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님, 이제 뭘 어떻게 하죠?” 대답이 들렸다. “산을 오르라.” 이 노부인은 천천히 등산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30분이나 지났을까, 전망대에 이르렀을 때 반갑게도 나무 의자가 눈에 띄었다. 그 의자에는 한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을 때 주님의 깊은 임재를 느꼈고 이 이상한 임무에 대한 이해가 왔다. 그 젊은이는 형편없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이 부인은 즉시 요점을 말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30마일 밖에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 당신에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분명히 중요한 일일텐데, 무슨 일이 있나요?” 젊은이는 잠시 놀라움에 입을 열지 못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리며 자기가 자살을 하려고 이 산에 올라왔다는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는 강에 떨어져 죽으려고도 했고, 차를 몰고갈 때마다 전복시킬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산에 올라 뛰어내릴 곳을 찾다가 결국 이 전망대로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 부인은 지체하지 않고 그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이루어진 놀라운 복음을 전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필요에 응답하신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이 젊은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께 자신의 삶을 드리기로 헌신했다. 예수 안에서의 새롭게 시작된 그의 삶은 그 부인을 산에서 내려가시도록 돕고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제7장 당신의 모범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된다. 우리는 그분의 삶을 그저 한번 힐끗 쳐다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철저히 연구하고 이해함으로써 그 원칙들을 삶에 적용시켜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무엇보다도 그분께 순종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온전한 포기로 연결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의존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구했다. ․예수님은 절대적인 순종으로 아버지께 연결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절대적인 믿음으로 아버지께 연결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셨다. 예수님이 모범을 보이신 이 진리를 따라 사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형태의 삶도 곧 우리 자신의 것을 말하고 행하는 교만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모든 영광은 우리에게 돌려지게 되는 것이다. 영적 권위는 예수님이 인자로 사셨을 때 따랐던 그 원칙들에 따라 살 때에만 주어진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하실 때 권위를 갖고 행하셨는데, 그것은 그 모든 일이 다 하나님 아버지의 승인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해 사셨다. 이제 이 책을 다 읽었다면 당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의 모험을 갈망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다 되어도 난 안 될 거야. 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데 너무도 많이 실패했는 걸.’ 그러나 당신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 열망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 나 역시도 할 수 없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통하여 사실 때에만 가능하다. 우리가 매일 그분께 우리는 이제 죽었으니 우리 대신 이 자리에 서서 우리의 모든 것을 맡아 달라고 아뢰며 나를 통해 그분의 방법대로 그분의 삶을 사시도록 초청하고 신뢰할 때 비로소 어떤 영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다. 성령의 능력은 우리로 주 예수님을 늘 우리 마음의 보좌에 계시도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거역하거나 근심시키지 말아야 하고 또한 그를 소멸시키지 말아야 한다. 성령 충만을 구하며 믿을 때 우리는 가장 안전한 것이다.
2014-09-08 22:15:19 Iuicfajy / 201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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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샬롬 조회 수: 4102
  •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크리스티 김............................................................................................................................................................................. .▣ 저자 크리스티 김 세계적 선교단체 YWAM(Youth With A Mission : 예수전도단)이 운영하는 열방대학(University of the Nations)에서 기독교 상담과 내적 치유를 가르치는 교수이다. 7개 단과대학으로 구성된 열방대학은 YWAM이 하와이 코나(Kona)와 우리나라 제주도 등지에 세운 국제적 기독교 교육기관으로서, 110개국 280개 지역에서 DTS(예수제자훈련학교)와 같은 선교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크리스티 김 선교사는 전 세계에 위치한 열방대학 중에서 일부를 순회 강의하며, 하나님이 그녀에게 베풀어주신 영적 치유의 놀라운 은혜와 비밀을 나누고 있다. 영어와 한국어가 가능한 이중언어자이기에 해외 교포와 서구의 크리스천 사이에 더욱 널리 알려졌으며, 해외 한인 유학생들의 수련회인 코스타(KOSTA : 유학생선교운동)의 인기 강사로서, '승리하는 영적 전쟁'과 '용서해야 산다'는 주제로 명강의를 펼치기도 한다. 14세에 유학길에 올라 미국 남가주대학을 졸업(심리학 전공)하고, 국제신학대학교와 탈봇신학대학교에서 상담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그녀 자신도 하와이 코나에 있는 열방대학을 수료했으며 1996년부터 동 대학에서 내적 치유 교수로 섬기고 있다. ▣ Short Summary 국제예수전도단(YWAM) 열방대학 내적 치유 교수인 크리스티 김이 전하는 내면세계 치유와 영적 성숙의 삶.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원통함을 토하라’는 것. 즉 기도를 통해 속마음을 다 털어놓으라는 것인데, 무슨 말이든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에 대해 하고픈 말을 기도로 몽땅 토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62편, 142편)을 근거 삼아, 다윗이 원수 같은 대적을 향해 속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드렸을 때, 그 다음절에서 오히려 용서와 이해와 축복의 기도로 바뀌었음을 설명하며 토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우리의 원통함을 아시고 들으시는 하나님께 ‘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시원케 하신다는 것. 그리고 깨끗해지고 새로워진 마음속에 다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와 기쁨과 용서를 담아주심으로써, 결국 우리를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도록 이끄신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마음속에 그런 치유의 과정이 없이 그냥 상처를 담고 지낸다면 사탄이 틈을 타서 우리를 다시 붙잡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므로 토하는 기도와 용서의 선언은 사탄을 대적하는 영적 전쟁에서 필수불가결의 요소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내적 치유의 과정과 원리를 명확하고 쉽게 설명할 뿐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례와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 차 례 1장 영적 성숙의 출발점인 용서 2장 은혜 받은 자는 용서할 수 있다. 3장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하라 4장 듣는 기도가 중요하다 5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 6장 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전술전략 7장 영적 전쟁에서 필승의 무기 8장 변화를 갈망하는 인생 9장 변화되지 못한 자의 내면세계 10장 하나님을 알아야 변화된다 1. 영적 성숙의 출발점인 용서 결혼생활을 충실히 하는 듯 보이는 남편의 마음 속에 전 애인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과 상실감을 생각해보십시오. 그와 같은 패턴이 우리 신자들에게도 공공연히 나타납니다. 교회에 정기적으로 잘 출석하고 봉사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을 마태복음 15장 8절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성숙과 변화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에 오래 출석했어도 속 사람이 변화하지 않는 이유 중 한 가지가 상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찢어진 마음을 다시 빚으사 생기를 불어넣어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의 변화가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갖가지 풍상이 그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대우들, 들어왔던 말들 중 특별히 상처가 되는 것은 성인이 되도록 가슴 속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하하거나 비교하는 말은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는 쓴 뿌리로 작용하여 우리의 삶을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며, 나쁜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숙을 위해서는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사람을 반드시 용서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당했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용서하고 회복되면 그 아픔이 예수님의 보혈로 씻겨집니다. 동시에 우리의 속사람 안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분노가 없어지고, 슬픔이 사라집니다. 칭찬과 격려를 들으면서 자라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우리를 비난과 무관심 속에 양육했던 부모님을 마음 깊이 용서한 후에라야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분노, 실망, 외로움, 슬픔, 답답함이 꽉 차 있을 경우, 문제는 그 상한 감정을 느끼기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아픔을 다루려는 생각조차도 싫어합니다. 상한 마음을 다루지 않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회복되지 않으면, 교회 안에 있어도 온갖 죄를 즐기게 마련입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척하면서 은밀히 짓는 죄는 결국 죄책감을 불러오며 이런 패턴은 악순환이 됩니다. 무조건 몸에 느낌이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탐하는 ‘육신의 정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을 눈으로 보고 즐기면서 짓는 죄인 ‘안목의 정욕’,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기보다 자기 성취, 자기 자신을 나타내며 그것에 자기 정체성을 두는 ‘안목의 자랑’은 세상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죄책감과 수치심, 허무함을 주고 그로 인해 자기 증오와 원망에 빠지게 함으로써 외로움과 아픔과 분노를 느끼게 하며, 다시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의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므로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회개를 했더라도 여전히 죄책감을 마음에 품고 자신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다는 확신이 없으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8:12)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회개 한 후에도 여전히 죄책감에 빠져 있다면 이는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입니다. 불신은 죄이며, 이런 믿음 없는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의 죄를 기억지 아니 하겠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다 아시지만 그 죄를 가지고 더 이상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의 삯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서 모두 지불되었으며, 모든 죄는 예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큰 복은 죄사함을 받는 복입니다. 이 죄사함의 확신이 있으면 눈빛부터 달라지고 변화가 시작됩니다. 용서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며 성숙에 이르게 됩니다. 사단은 자꾸 의심을 불어넣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나는 용서받았다! 잠잠할지어다!"라고 선포함으로 대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이렇게 용서받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 비로소 타인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2. 은혜 받은 자는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하지 않은 자가 당하는 영적 피해 첫째,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영적으로 깨끗한 마음이란 용서하는 마음, 허물을 덮어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마음이 영적으로 깨끗한 마음이며 성숙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죄를 품게 되어 영적으로 더러워지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용서하지 않으면 사탄이 틈을 탑니다. 사탄이 무서워하는 기도 중에 하나가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용서를 하면 틈이 없어지고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사탄은 용서 기도를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그러나 용서의 기도를 하고 그간의 죄를 회개할 때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던 사탄은 꼼짝없이 나가게 됩니다. 셋째, 용서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우리는 두 유형의 사람을 닮는데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 나머지는 용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유는 용서하지 않고 거부하면서도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용서하지 않으면 그런 이성과 결혼하게 됩니다.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나는 저런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을 거야, 저런 사람은 용서 못해’라고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런 사람에게 익숙해지게 됩니다.익숙함은 친근함으로 이어져서 편안한 느낌 때문에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과 멀어집니다. “Christianity is not just a religion, Christianity is a relationship" 즉, 기독교는 단순히 종교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과 친밀한 관계, 교제를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가슴으로 만나지 못하며, 영혼 깊은데서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지 못합니다. 교회에 와서 찬양하고, 헌금하고.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 하는 행동을 다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혼 깊은 데서 주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자꾸만 주님이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속이 허탈하고, 어딘지 모르게 냉랭합니다. 뜨겁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하나의 종교적인 관습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 안에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우리 안에서 충만히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여섯째,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을 닮아갈 수 없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주님과의 관계가 멀어질 뿐 아니라 닮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숙이란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온유하심과 자비로우심 그분의 용서와 그분의 희생적인 사량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일곱째, 용서하지 않으면 관계가 회복되지 않습니다. 회복되어야 할 부모 자식 관계, 회복되어야 할 고부 간의 관계, 형제들 사이의 관계, 성도들 관계. 친척과 친구들의 관계가 안타깝게도 회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절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이해와 용서는 별개입니다. 어떤 분들은 상처 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용서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은 우리의 육적인 연약함을 알고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유혹에 이끌려 죄 짓는 우리에게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엄연히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믿음과 고백을 통해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여덟째, 용서하지 않으면 몸이 쇠약해집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하면 건강해집니다. 아홉째, 용서하지 않으면 외롭게 삽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외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자꾸만 외롭습니다. 아무도 안 만나고. 누구와도 절교하고. 누구도 꼴 보기 싫습니다. 자꾸만 혼자가 됩니다. 외톨이가 됩니다. 그러면서 우울증에 빠집니다. 대인 기피증에 걸리고 혼자만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롭게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용서하고 더불어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외로움은 영적인 암과 같습니다. 그 사람을 어둡게 만듭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꾸만 외롭게 됩니다. 열째,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에 묶입니다. 그때, 그때 그러면서 자꾸 과거에 머물게 됩니다. 과거에 머물면 현실을 놓칩니다. 과거에 머물면 미래를 놓칩니다. 그렇게 현실과 미래를 놓치면서 자꾸만 퇴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하면 과거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더 이상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과거를 되새김질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열한째,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가 치유되지 않습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또 쉽게 상처를 입힙니다. 아주 사소한 것을 문제 삼아 가며 상처를 받습니다. 공격적인 성격의 사람은 눈만 조금 마주쳐도 왜 째려보느냐며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또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죄를 쉽게 짓습니다. 왜냐하면 상처가 아프기 때문에 무언가 기분 좋아지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하는 말이 다릅니다. 마음 속에 원망이 가득하다면 우리 속에서는 계속 원망의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열두째,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신 그 사랑을 더욱 절실히 체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야 합니까? 원수 갚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롬 12:19, 20). 당신이 용서해야 할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입니다. 선으로 악을 갚을 때 우리는 승리합니다.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복수하겠다고 그러면 우리는 묶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나 잘못되었습니다. 복수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원수를 갚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용서란 무엇인가? 첫째, 용서는 결단입니다. 어떤 분들은 용서라는 감정에 중점을 두고 용서하기를 거부합니다만 용서는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다루면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감정에 치우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결단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는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기로 결단합니다." 이 고백은 위선이나 가식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용서는 누구보다 용서하는 이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냥 용서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억울함과 원통함 속에 지내게 됩니다. 반대로 용서하면 자유하게 됩니다. 둘째, 용서는 과정입니다. 용서는 한 번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는 과정입니다. 계속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용서하는 과정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뿐이겠습니까?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 용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마다 용서하기로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용서할 때 상처의 껍질은 마치 양파 껍질처럼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갈 것입니다. 결국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를 하는 날이 찾아오고 설령 생각은 날지언정 아픔이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용서하여 상한 마음이 치유되면 더 이상 그 상처의 기억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화해하기 원하시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주셨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화목케 되지 못합니다. 상대방이 화목케 되길 거부한다면 그의 그러한 선택 또한 용납해야 합니다. 또한 용서했다고 그 사람을 즉시 신뢰하거나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고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했을지라도 그런 사람을 다시 대할 경우에는 지혜와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어떤 경우 잘못된 기준을 주장하거나 불필요한 의무감을 떠안아 본인도 상처받고 상대로 하여금 또 다시 죄의 길에 빠지도록 길을 열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용서는 은혜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누구에게 어떠한 상처를 받았더라도 주님의 선하심과 주님께서 당신의 모든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시고 사하셨다는 것을 진정 깨닫고, 믿고. 감사한다면 당신의 삶 가운데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죄사함에 관한 깨달음과 감사가 없거나 있더라도 곧 잊어버리기 때문에 용서하지 못합니다. 요셉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 그의 삶을 본받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할 때 복을 받습니다. 마귀는 패배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더욱 이런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응어리와 상처가 하나씩 치유되면 우리의 모든 면에서 변화가 시작됩니다. 첫째, 지적인 측면에서 머리도 맑아지고 더욱 총명해집니다. 둘째. 정서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 의지력도 건전하게 강화되어 사양해야 할 상황(예를 들면 죄의 유혹, 부적절한 부탁이나 강요)에서 적절하게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예’나 '아니요’라고 분명히 답변하여 얼버무리거나 불의한 타협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넷째. 마음의 상처에서 비롯된 질병이 없어지고 건강해집니다. 다섯째. 영적으로 맑고 깨끗하며 성숙해집니다. 3.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하라 마음에 있는 것을 꺼내어 주님 앞에 고백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남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십니까?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그 마음을 토로하십시오. "하나님 제 남편을 죽이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고상하고 유창한 기도, 반질반질하게 기름을 칠한 것 같은 종교적 언어로 포장된 기도를 듣고 감동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8). 하나님은 분명히 마음을 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소리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 앞에 토하며 내 우환을 그 앞에 진술하는도다.”(시 142:1~2) 누군가를 정말 미워해서, 정말 원수 같은 어떤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그의 마누라가 과부가 되게 해주고, 그 아이들은 고아가 되게 해주시고, 빌어먹게 해주시옵소서. 그 집안의 씨를 말려주십시오." 성경에 바로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시편 109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가 이런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에게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왔지만 다윗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미 마음에 있던 원통함을 하나님 앞에 토해냈습니다. 이미 퍼부었고 쏟아냈기 때문에 원통함을 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마음을 토하고 주님을 피난처로 삼은 다윗을 향해 하나님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포장하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폼 잡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솔직히 토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간혹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님.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고 죽이고 싶다는 기도를 했다가 그 기도가 응답되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뱉는 기도를 들으시고 무식하게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합당하게 선하고 지혜롭게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토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토하는 내용을 품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십니다. 마음을 토하는 기도의 유익 첫째,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둘째, 하나님과 친해집니다.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토할 때. 하나님께 친밀함을 느끼게 됩니다. 셋째,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때는 형식이 필요 없습니다. 믿음으로, 은혜로 나아갑니다. 예수께서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 용서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껏 토하면 응어리가 풀리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다섯째, 기도가 바뀝니다. 시편을 읽다 보면 같은 시편인데도 앞뒤가 너무나 달라집니다. 앞 절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재앙을 한탄하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앞에 마음껏 마음을 토하니까 기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토하면 마음이 깨끗해지면서 영적인 주파수가 주님 앞에 더욱 명확히 맞춰집니다. 4. 듣는 기도가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마음을 토하고 기도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들으십시오. 듣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 갈 길을 가르치고 인도하시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받을 줄 모르고 들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우리는 듣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지 열한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꿈과 환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둘째, 성경 말씀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잘 배우고, 공부하십시오. 성경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알면 못할 소리가 없습니다. 사탄도 예수님께 부분적으로 성 경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부분적으로만 아는 성도들이 쉽게 이단에 빠집니다. 성경 말씀을 모르면 잘못된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는 법이 없다면 우리는 매우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뭔가 들었다면 다시 한번 주님께 나아가서 기도해보십시오. "주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신 겁니까? 주님! 이것을 확증해주옵소서." 넷째,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다섯째, 생각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는데 어떤 생각이 막 떠오르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여섯째, 책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책뿐만 아니라 다른 좋은 책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많은 주의 종들을 통해 영적으로 좋은 책들을 쓰게 하시고 그 책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일곱째, 영화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십계〉, 〈벤허〉와 같은 영화는 좋은 영화입니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잘 분별해서 보아야 합니다. 여덟째, 만물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하나님은 이렇게 너무나 섬세하신 분입니다. 저는 그 신비를 생각할 때마다 “오! 주여. 주님은 너무너무 기가 막힙니다. 주께서 저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십니다.”라고 감탄합니다. 만물을 보십시오.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솜씨를 보시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아홉째, 예배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도중에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열째, 기적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작은 틀에 집어넣은 채 우리의 인간적이고 타산적인 수준에서만 믿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말씀 안에 기록된 수많은 이적들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통해 능력을 나타내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열한째, 찬양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찬양 중에 임하십니다. 찬양은 주님을 선포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양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주님께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창의력이 풍부하시기 때문에 더욱 다양하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우리 생각으로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 첫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자 한다면 교만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깨끗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넷째, 전심으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하나님은 분명히 “마음을 다하여.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째, 인내해야 합니다. 기도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말씀하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여섯째, 주님의 말씀 앞에 순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순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듣기만 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곱째, 주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의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6. 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전술 전략 무지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호세아서 4장 6절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초신자로서 마귀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습니다. 마귀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마귀에 관하여 배우고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악한 생각을 주입하는 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의 죄의 생각입니다. 음란한 생각, 훔치는 생각, 속이는 생각, 거짓된 생각, 추한 생각, 더러운 생각을 넣어줍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추하고 더러운 생각, 남자 분들의 경우에는 음란하고 야한 생각들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럴 때에 대체로 누구를 미워하게 됩니까? 바로 자기 지신을 미워합니다. 이러한 자기 증오는 또 하나의 함정이 되고 맙니다. 사탄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탄은 교묘합니다. 그런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생각을 조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십시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당신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당신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교통 정리하는 경찰을 보십시오. 그 경찰이 아무리 체구가 작더라도 호루라기를 불면서 손을 내밀면 모든 차들이 멈춥니다. 왜냐하면 모든 차들이 그 신호에 따르도록 그 경찰에게 법적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귀를 제압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권세는 예수님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오는지 다섯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탄은 우리에게 나쁜 생각을 주입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운 생각을 넣어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지 않으시며 오직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음을 주십니다.(담후 1:7)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며 두려움의 생각과 죄의 생각을 넣어줍니다. 하나님에 대해 거짓된 생각을 넣어줍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실까?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하나님이 널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너에게 이런 일이 있느냐?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사람은 듣는 것이나 보는 것에 큰 한계가 있는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머리로 아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욥은 욥기 42장 1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겁니다. 모른다는 대답을 할 줄 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둘째, 사탄은 사람을 통해 우리를 훼방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와 가까이 지내는지 심각하게 평가해봐야 합니다. 혹시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 가운데 죄 짓자고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죄 짓기를 즐겨 하는 친구가 있습니까? 관계를 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경건함을 사모하는 자들과 어울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통해 잘못된 유혹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잘못된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분들은 흔히 이런 잘못된 가르침에 빠지기 쉽습니다. 저도 초신자 때 잘못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될 뻔했습니다. 셋째, 사탄은 우리를 직접 공격하며 훼방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직접 공격하여 질병을 주기도 합니다. 물론 사탄이 모든 질병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탄이 주는 질병도 있습니다. 욥이 바로 그랬습니다. 욥은 온몸에 악창이 나고 고름이 흘러서 기왓장으로 온몸을 긁었습니다. 사탄이 준 것이었습니다. 넷째, 사탄은 매스컴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사탄은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매스컴을 통해 공격합니다. 어떤 영화를 보십니까?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십니까? 사탄은 영화 장면을 통해 공격합니다. 눈과 귀는 우리 영혼의 문(門) 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보는 것에 대단히 치중합니다. 2002년도 겨울, 미국에서 십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팔렸던 컴퓨터 게임은 여자를 때리면 접수가 올라가고 성폭행하면 더 많은 접수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게임 내용도 모른 채 인기 있는 게임이라고 해서 십대 자녀들에게 사준 것입니다. 포르노 때문에 너무나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인 노리개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죄는 자꾸만 좀더 큰 자극을 요구합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테드 번디라는 남자가 20여명이 넘는 여자들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젊은 여성을 강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테드 번디는 사형당하기 직전, 정부에 기막힌 호소를 하고 죽었습니다. 어떤 호소인지 아시겠습니까? "포르노가 있기 때문에 이 사회에는 나 같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을 것이다. 나는 포르노를 통해 여성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성적인 노리개로 보였을 뿐이다. 제발 정부는 포르노를 없애는 데 진력해 달라. 나만 사형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남성들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제발 이 사회에서 포르노를 없애 달라." · 포르노가 나쁜 이유 ① 사랑과 결혼의 헌신 없이 하는 성행위로 추락할 수 있다. ② 하나님이 만드신 선물을 추하게 만든다. ③ 이기적인 행동을 조장한다. ④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여성을 성적인 노리개로 비하한다. ⑤ 부부만의 은밀함을 구경거리로 만든다. ⑥ 부부관계가 멀어진다. ⑦ 범죄를 유발한다(포르노가 증가하면 성범죄도 증가한다). ⑧ 음란한 영에 묶이게 된다. ⑨ 영혼이 더렵혀진다. ⑩ 기도가 잘 안 된다. 다섯째, 사탄은 우상과 미신을 통해 우리를 공격합니다. 집사님이나 권사님들 중에도 손금을 보고 생명줄이 길다느니 짧다느니 결혼을 몇 번 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분이 있는데 그런 것은 우리의 삶과 전혀 무관합니다. 우리의 삶은 손금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부적 같은 신적인 물건 외에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정산하고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물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사탄에게 훼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입니다. 마치 사단의 해코지를 자초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마술을 행하던 자들이 예수를 믿은 다음 마술책을 다 태워버리는 기록이 나오는데, 초대 교인들은 이렇게 과감히 순종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대가를 지불하는 과감한 순종이 필요합니다. 7. 영적 전쟁에서 필승의 무기 · 첫째 무기 - 예수님의 이름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 16:17). 예수님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세는 사역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어느 여성이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도망치고 싶어도 감시가 너무 심해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강제로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져야 했기 때문에 날마다 강간당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곳에서 탈출하게 되었고 나중에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끔찍하게 이 자매를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아이도 낳고 겉보기에는 평온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듯했지만 이 자매의 마음속에는 증오와 분노가 뜨겁게 끓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납치했던 남자들에게 바보같이 끌려가서 온갖 수모를 겪은 자기 자신에게, 억지로 성관계를 가졌던 수많은 남자들에게 그녀는 분노했습니다. 심지어 남편과 이혼하고 싶은 충동이 자꾸만 일어나서 작은 말다툼을 벌이다가도 당장 이혼하자고 고함을 질러대기 일쑤였습니다. 아이 때문에 이혼하기 어렵다고 생각되자 아이 역시 너무나 미워졌습니다. 급기야 아이를 모질게 대하고 감정에 치우쳐 손을 대는 일까지 잦아졌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러는 자신이 미워서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할지 도무지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먼저 자매를 납치했던 남자들과 성관계를 요구한 뭇 남성들을 용서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녀와 남편에게 아픔을 주었던 일에 관해 용서를 구하자고 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자기 바지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기 시작하더니 곧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며 고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를 노려보고 두 손을 들어 할퀴려는 자세로 다가왔습니다. 그 때 단둘이 상담하고 있었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저도 몹시 놀라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싸움이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즉시 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너 거기 가만히 있어." 그리고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용서 기도를 마치세요! 주님께 용서기 도 드리세요.“ 그러자 자매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며 방바닥에 엎드리더니 뒹굴었습니다. 아픔을 고백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다시금 저는 용서 기도를 하자고 청했습니다. 결국 용서 기도를 하면서 입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다 나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자매는 소리내어 토했고 저는 자매의 배에다 손을 대고 계속 명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다 나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나가!" 울고, 소리 지르고. 뒹굴고, 토하고…. 그 자매는 한참 후에야 드러누운 자세로 긴 한숨을 쉬더니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자매는 지쳐 보였지만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제게 돌리고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귀신이 내 안에 있어서 그동안 그렇게 남편과 아이에게 못되게 굴었군요. 내가 왜 그렇게 좋은 남편을 자꾸만 미워하고 이혼하자고 다그쳤는지 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제 마음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샘솟고 있습니다. 오늘 집에 가서 사랑한다고 말하겠어요." 그 자매의 마음 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였지 단순히 인간적인 다짐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 둘째 무기 - 하나님의 말씀 ‘너는 못 생겼다. 그 꼴로 생겨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그때 우리는 말씀으로 싸울 수 있습니다. "기록하였으되, 주께서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시도다."(시편 139:14참조). 예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선포하시면서 사탄과 싸우셨습니다(마태복음 4장 참조).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으로 싸우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래야 합니까? · 셋째 무기 - 주님의 보혈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2:11). 한번은 강의를 마치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간사님 중에 한 분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어떤 사람이 귀신이 들렸으니 와서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짐을 싸다가 멈추고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는 방에 가기 전에 먼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를 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시옵소서. 주님, 저를 주님의 보혈로 보호하여주옵소서. 이제 싸우러 갑니다. 승리를 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대적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혈의 능력을 덧입는 것이 중요합니다. · 넷째 무기 - 하나님의 전신갑주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0~17)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어떻게 입습니까? 첫째, 믿음으로 입습니다. 둘째, 행함으로 입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투구란 영적으로 우리의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며, 우리의 생각을 지키는 삶을 말합니다. 의의 흉배란 예수님 때문에 의인이 된 우리는 의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의인다운 행함이란 거짓과 부정부패를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속임수를 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그 성령의 검을 손에 들고 읽고. 듣고. 암송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신을 신고 전도자적 삶을 살기 바랍니다. · 다섯째 무기 - 찬양과 기도 찬양과 기도 역시 우리의 무기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찬양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8장 변화를 갈망하는 인생 나는 하나님이 안 계셨다면 저는 한 번밖에 못 사는 이 세상, 재미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할 것이고, 기분 좋은 것이라면 뭐든지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이 세상이 전부라면 마음껏 만져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죄다 느껴보고, 보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보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하면서 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어 새롭게 되고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필요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자꾸만 알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자꾸만 알아가면 그분의 사랑을 더욱 체험하게 되며. 우리의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심령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9. 변화되지 못한 자의 내면 세계 저는 열방대학의 훈련을 통해 내면이 새로워지는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이 훈련을 받고 변화되기 전에도 저는 신학원에 다니며 제자를 양육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진정한 변화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정보와 내용을 전할 수는 있었지만 삶에서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진정한 변화를 받지 못한. 내면세계가 변화되지 못한 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째,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소위 ‘잘 믿는’ 크리스천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형식’입니다. 저 역시 바로 이 형식에 매여 있었던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큐티(QT)를 합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도 의무적으로 억지로 숙제하듯이 읽었습니다. 졸릴 때는 짜증을 내면서 읽습니다. 도표를 따라 찾아 읽고 또 씁니다. 적용할 것을 쓰고, 기도 내용을 쓰고, 다 마치면 어떻게 합니까? 성경책을 덮으면서 “아! 다했다”고 합니다. 하루의 숙제를 마친 것입니다. 가슴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이 한다면 그것은 껍데기입니다. 갖은 폼을 다 잡아도 그것은 껍데기이고 형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습을 너무나 슬퍼하십니다. 둘째, 다분히 감정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집회나 수련회에서 은혜를 받으면 순간 뜨겁고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그 뜨거움이 약 2주면 푹 가라앉아 버립니다. 셋째, 애정 결핍의 모습이 있습니다. 애정 결핍 상태의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역자들은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역자란 하나님께 사랑을 공급받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이 넘쳐흘러서 성도들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메마른 가슴으로 설교해놓고 성도들한테서 사랑을 구하느라 헐떡이는 격입니다. 넷째,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비성경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부정적인 생각을 말씀을 통해 치유해주셨습니다. 하루는 시편 139편 말씀을 읽다가 제 자신을 향한 자기 증오와 외모에 대한 증오가 치유되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3~14).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시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시각이 바뀝니다. 다섯째, 불건전한 관계를 갖게 됩니다. 인간관계에 죄가 스며듭니다. 교인들을 상담하다보면 불건전한 관계에 대한 경위가 밝혀질 때가 있습니다. 그 마음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이러한 죄악된 관계를 은밀히 즐길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심령이 채워지면 죄악된 관계를 끊을 수 있게 됩니다. 쓸데없는 집착을 버릴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한 마음을 치료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이런 나쁜 습관에는 교회 중직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흥청망청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별난 노래 다 부르며 스트레스 푸는 나쁜 습관들이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 안에서 변화되기 전에 폭식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습니다. 울적하면 먹고, 외로우면 먹었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습니다만 그것은 공허함을, 외로움을 먹는 것으로 채우려 했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또 저는 영화를 무분별하게 봤습니다. 개중에 도박이나 포르노 같은 나쁜 습관에 얽매인 분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됩니까? 우리 마음에 주님을 닮아가지 않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런 죄를 즐기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으며, 닮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나쁜 습관이 자리 잡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일곱째, 신체적 질환이 발생합니다. 우리의 내면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속에 담고 살아갑니다. 또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미워할 때, 그 마음 자체가 다루어지지 않을 경우 질병으로 이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계십니까? 당신의 마음에 원망이 가득 차 있습니까? 그분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래야 몸이 건강해집니다. 여덟째, 불건전한 생각이 망상으로 발전하고 자꾸만 상상의 날개를 폅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음란한 생각까지 품게 되면서 밤낮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지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후회와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은 현실을 놓칩니다. 과거에만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인생은 지금입니다. 지금이 소중합니다. 아홉째, 마귀에게 틈을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귀신들렸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틈을 탈 수 있는 요소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았거나 분노를 품은 일도 이에 해당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엡 4:26~27).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선 자신의 분노를 하나님 앞에 아뢰십시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은 요소를 용서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런 다음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하십시오. 그러면 귀신이 쉽게 떠나갑니다. 우리가 할 일은 회개와 용서입니다. 또, 자신도 모르게 행하고 있는 나쁜 습관이 있다면 마귀에게 틈을 주는 부분은 무엇인지 기도하면서 자신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10. 하나님을 알아야 변화된다 우리 역시 새로워져야 합니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변화 받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안다고 할 때는 그에 대한 정보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그와의 만남이 있고 교제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안다’는 말은 '야다'(yada)입니다. 그 단어의 의미는 정보를 가지고 얘기하는 정도의 '안다'가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 '안다'의 의미는 만나고 경험하는 친밀한 관계를 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확신이 있는 신앙을 갖게 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저 역시 한동안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율법주의 아래서 하나님에 대해 알았습니다. 정보를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슴이 공허했습니다. 머리는 꽉 찼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허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생활이 지겨워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알 때는 지겹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과 만남을 갖게 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될 때 신앙생활은 지겨운 것이 아니라 즐거워집니다. 우리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나의 친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정보성 신앙이 아니라 심령 깊은 데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귀한 신앙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친구끼리 더욱 친해지고 서로 잘 알아가려면 시간을 같이 보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도 그래야 합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면하기 쉽습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친구로 대한다는 것은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늘 주님과 같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주님과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시간을 보내십시오. 주님과 같이 있어보십시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십시오.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것이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무언가를 꼭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나 중심의 태도를 내려놓은 그날부터는 말씀을 읽을 때 마음에 깨달음이 있든 없든 주님 한 분만을 사모하며 그분 발 앞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가 마냥 좋아서 그저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서 다가오듯, 연인들이 꼭 무언가를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함께 있는 것 자체를 행복해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영혼의 연인이신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꼭 무엇인가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함께하고 싶은 만남입니다. 둘째,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주님,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해요. 제 마음 깊은 데서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기 원해요." 이렇게 고백해보십시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면서 진정한 마음을 드릴 때 저는 마음이 진짜 흥분됩니다.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헌금을 많이 드리고, 성경을 암송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의 열매일 뿐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몸만 와서 앉아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뿌듯해지고 기쁩니다.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기 때문입니다. 셋째,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당신의 영혼에 변화가 일어나서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으면 당신은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드린 여인처럼 주님께 기쁨으로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물질을 드릴 수 있습니다.(눅 6:38) 넷째, 봉사하고 구제하며 하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봉사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공부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공부를 잘 하면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삽시다. 우리 자신만 위해서 살지 맙시다. 축복하며 살아갑시다. 우리나라의 많은 엄마들이 내 자식. 내 새끼만 잘되면 그뿐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이 내 자식, 내 새끼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다른 집 아이들도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잘되고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제자됨의 표시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려라."(요 13:34~35) 여섯째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새롭게 되면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고도 변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뭔가 잘못됐습니다. 병들어 있는 신앙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같이 말했습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날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
2012-12-07 00:33:08 / 2012-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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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소개: 샬롬 조회 수: 2121
  •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로렌 커닝햄․제니스 로저스 지음/예수전도단 옮김 번쩍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 나는 팜비치에 있는 산드라 고모 집의 넓은 대리석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호킨스 아저씨가 나를 안내했다. 내 눈길은 가죽 의자 옆에 세워 놓은 지구본에 멈췄다. 짧은 순간, 스무 살 때 본 이후로 지금까지 육 년 동안 내 마음 속에 살아 있는 그 특이했던 환상이 머리를 스쳤다. 선교 사역을 하는 주의 청년들이 세계 모든 대륙의 해안을 행진하면서 물결처럼 그 대륙들에 상륙하는 광경이었다. 난 어떻게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명령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전’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혹시 내가 가진 이 비전도 하나님을 위해 크게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특별한 인도하심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산드라 고모에게 세계여행을 통해 내가 본 젊은 선교사들에 대해 말씀드렸다. 산드라 고모는 그 일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다. 산드라 고모는 어렸을 때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뒤로 제쳐놓고 싫어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에게 나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모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전에 산드라 고모를 실망시켰던 부분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에 대해 정말 정직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텍사스 주 우발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매우 안락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즉시 세탁소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직업을 가진 채 텍사스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주말에만 시간제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중 큰 위기에 부딪히게 되었다. 1916년 무렵 무서운 천연두가 나돌고 있었는데 부인과 두 아들이 (두 남자아이와 세 명의 누나들이 있었다) 그 병에 걸렸다. 2주 동안 커닝햄 할아버지는 부인과 아이들 침대 옆에서 밤을 지샜으나 할머니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놀랍게도 이 슬픔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커닝햄 할아버지는 전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딸인 산드라 고모를 크게 실망시킨 것은 할아버지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벌써 그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적인 인도하심이 있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 듣고 나서 계속해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최선을 놓칠 수도 있다. “무엇을 하라.”는 인도하심을 안 후에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를 알아야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에는 순종했지만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았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인도를 계속적으로 구했다면 아마도 그 후 잇따라 일어났던 고통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순회 성경 교사로서 일하기 원하셨다. 그는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늘 데리고 여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각각 다른 집에 맡겼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그 결정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산드라 고모와 아르네트 고모는 그들이 어렸을 때 겪었던 어려움과 슬픔을 할아버지의 “어리석은 부르심” 탓으로 여겼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로 결심했고, 성장한 뒤에는 각자 원하는 길을 갔으며 사업에 몰두하면서 최선을 다해 돈을 벌었다. 그것이 어머니와 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들의 보상책이었다. 그들은 성공했다. 산드라 고모는 3개의 대 저택을 소유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톰은 두 아들 중 맏이였는데, 어린 시절 집을 아홉 군데나 옮겨 다니면서 어렵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도 열일곱 살 때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남서부를 두루 다니며 부흥집회를 열었다. 가족으로부터 이어받은 유산 나의 아버지 톰 커닝햄은 다른 순회 전도자 가족의 셋째 딸 주웰에게 매혹되었다. 그녀는 12살이던 어느 늦은 여름날 오후 시냇가 뚝 위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한 음성으로 “나는 네가 복음을 전파하기 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17세가 되었을 때 설교자가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몇 달을 노력한 후에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신혼부부인 부모님은 이 도시, 저 도시를 여행하면서 거리에서나 간이 정자 밑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때로는 분명한 소리로, 때로는 마음에 확실하게 다가오는 인상으로 들을 수 있는 내적인 음성에 친숙했다. 또한 그들은 말씀을 통해서나 꿈과 환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도 익숙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실 때면 아버지는 늘 “우리는 예수님의 긴급 명령을 이루는 종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 그것이 열쇠이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모든 곳에 가서 복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셨다면 그분은 분명히 우리가 가야 할 곳도 친히 인도하실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어디든지 갔다. 1933년에 나의 누이 필리스가 태어났고, 2년 후에 내가 태어났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먼지 많고 사막 같은 아리조나의 시골, 사방 10피트의 텐트 속에서 상자들을 가구로 삼고 살던 일들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불우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자랐다. 부모님은 하고 계신 사역과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 우리도 동참시키셨다. 6살 때 어느 저녁 집회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는 확신을 가졌고, 처음으로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10살이 된 이후로 아버지는 나에게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에는 내가 집을 돌봐야 한다고 말씀해 오셨다. 그 즈음 슬픈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전화를 통해서였다. 집을 떠나 있던 아버지가 맹장염에 걸리셨는데 수술을 하지 못해 복막염으로 이미 번졌을 가능성이 있고 전쟁 기간이라 페니실린도 없는 상황이므로 돌아가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전화기를 내려놓으시고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간절히! 나는 소파 뒤로 기어가서 몇 시간 동안 거기서 기도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 후에도 아버지의 상태는 여전했다. 우리가 계속해서 붙잡을 수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떤 말씀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생겼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3일 후에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커닝햄 자매님, 제 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남편이 관에 실려 집에 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기분 나쁜 남자가 말했다. “여기까지 오셔서 이렇게 일러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걸음이었는지도 이해하구요.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께 여쭤보고 그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알아보겠어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하시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아주 단호했다. 그리고는 그 신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 후에 현관문을 닫으셨다. 그리고는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만약 그 꿈이 당신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단지 그것만 알려주세요. 그게 제가 알고 싶은 전부입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계셨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 아버지다운 방법으로 대답해 주실 것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기대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어제 밤 꿈속에서 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잠옷차림으로 집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회복되어 어머니의 꿈대로 침대차를 타고 잠옷 차림으로 도착한 것이다. 전쟁 중이라 좌석을 예약하기가 불가능했지만 친구 덕분으로 침대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후에 어머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면을 지적하셨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야.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씀하신다면 우리에게 직접 하실 거야.” 가족으로부터 이러한 유산을 이어받은 나 역시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 부르심에 따라 일하는 동안,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알고 있었던 지극히 작은 지식까지도 모두 활용되었다. 우리의 인생을 바꿔 놓은 어린 소녀 어느 날 저녁 어머니의 설교가 끝난 후에 나는 삼촌 교회의 강대상이 있는 난간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돌연 몸이 하늘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 들었고 내 눈앞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써 있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장 15절의 지상 명령이었다!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그 말씀이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그런데도 불타오르는 것 같은 그 말씀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내가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아마도 해외 선교사로 부르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 앞에 써 있던 그 말씀은 “온 천하에 다니며”였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 어머니를 찾았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내게 일어났던 일을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싱긋이 웃고는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날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가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이 가게에서 제일 좋은 구두를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에게 말했을 때 나는 놀라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내 신은 아직 신을 만했다. 어머니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우리가 축하하는 거야, 로렌! ‘좋은 소식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성경 말씀에 아빠와 내가 얼마나 동감하는지 네게 보여주려는 조그만 표시란다.” 내 15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아침, 나는 교회의 나무 의자에 앉아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 속은 여러 달 동안 신문배달을 해서 번 돈으로 나중에 차를 살 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설교의 어떤 부분에 정신을 집중했을 때, 며칠 전 첫 번째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한 아랍 소녀에 관해 말씀하고 계셨다. “아랍 소녀는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한 거지에 불과했지만, 나는 평생 그 아이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구걸하는 그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아이는 동전 이상의 더 깊은 것을 요구하는 듯했다. 위로, 격려, 사랑,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 그것은 바로 복음이었다. 잠시 말씀을 멈췄을 때 나는 아버지가 울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세계 선교는 단순히 말에 그쳤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제부터 선교는 그 아랍 아이의 얼굴 같이 구체적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마쳤다. 나는 새로운 흥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변화된 사람은 아버지 혼자가 아니었다. 1년 전 알칸사스 삼촌의 교회에서 내 앞에 씌어 있던 그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온 천하에 다니며….” 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모아 둔 40달러를 선교를 위해 헌금하기로 마음먹었다. 세미한 무엇인가가 내 마음을 요동시키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계속되는 내적인 음성은 내 인생이 자동차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더 큰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19살이 되던 1954년 가을 누나 필리스와 나는 닷지 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나는 미주리의 스프링필드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 신학대학에 가기로 결정했고, 누나는 센트럴 성경학교에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10살난 제니스는 집앞 보도에서 우리가 짐을 다 싣기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아버지께서 우리가 영육간에 안전하도록 기도해 주시는 동안 우리 다섯 식구는 동그랗게 모여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차를 몰고 모퉁이를 돌 때는 입술을 깨물어야 할 만큼 가슴이 뭉클했다. 일생을 두고 하게 될 어떤 모험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물결치는 파도 바하마 여행은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곳에서의 특별한 체험은 내 인생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주리 주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와 세 명의 친구들은 복음송을 부르는 4중창단을 만들었다. 우리는 방학을 이용해서 가까운 스프링필드 지역을 벗어나 좀더 먼 곳으로 여행하곤 했는데, 한번은 바하마 섬의 수도인 나사우(Naasau)를 택했다. 찬양 공연 중간 중간에 우리는 그곳의 선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십대 청소년 세 명이 선교 사역을 위해 와서는 섬 소녀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데 시간을 보냈고, 그 일로 이제 그 섬에는 온갖 좋지 못한 소문이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선교사 사택에 누워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곧 이어 일어난 일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내가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지도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다. 그것은 마음으로 보는 영화 같은 것이었다. 모든 대륙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파도가 해변에서 대륙으로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고 그리고 더 깊이 밀려 들어와서 그 대륙을 완전히 덮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내가 그 장면을 지켜보는 동안 그것은 또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 그 파도들은 내 나이 정도의 젊은 사람들이나 혹은 나보다 어린 청소년들로 변하여 그 대륙들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에서나 음식점, 혹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돈 한푼을 구걸하는 어린 아랍 소녀를 돌보는 것 같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사라졌다. 와!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주님! 이 환상이 정말 당신께로부터 온 것입니까?’ 놀라운 일이었다. 청소년들이 선교사로 나간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환상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던 미국 청년들 문제 같은 것은 피할 길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젊은이들의 힘을 사용할 어떤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 환상을 보여주었을까?’‘나의 미래는 이 젊은이들로 된 파도와 무슨 연관이 있게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에게도 이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먼저 그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 스스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확실한 부르심을 주시면 그것에 대한 시험이 기간이 뒤따르게 하시기 때문이었다. 주일 오정쯤 우리는 떠날 준비가 끝났다. 나는 공중전화로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떠나기 전 몇 분 동안이라도 고모를 만나뵐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고모는 아주 친절했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아버지와 아르네트 고모, 산드라 고모는 다시 만나서 화해하셨다. 정말 행복한 재회였다. 조촐한 시작 24살이 되던 해, 나는 대학을 마치고 가족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지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얘야,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네가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너를 쓰실 수 없단다.”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학교 졸업반이었을 때 학생회 회장이었고 하나님의 성회 목사로서 안수도 받았다. 또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청년부 지도자라는 좋은 직책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만이라니…. 어머니는 정곡을 찌르시는 분이긴 하지만 이번만은 잘못 보신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당시 나는 나의 일을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지도하는 청년들은 모두 똑똑하고 열심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젊은이들을 위해 세운 활동 계획들의 대부분이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도전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특히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은 바로 큰 도전이었다. 나는 바하마 섬에서 보았던 그 신기한 환상을 다시 기억했다. 그 후로 벌써 4년이 지났다. 그 비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착잡했다. 무엇인가 해야 할 때다. 바하마 섬에서 보았던 그 파도가 밀려오는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알아보아야만 했다.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 얼마 동안 여행하면서 해외에 어떠한 가능성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일 것이다. 그러고 떠난 여행 중에, 인도의 어느 외딴 섬에서 나는 수백만이 나와는 전혀 다른 신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어둡고 무척 더운 밤, 16살짜리 소년이 칼싸움 하다 죽임을 당해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장작더미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 속을 채우던 그 무기력함과 절망감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나는 가슴을 휘젓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그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한 달 후에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의 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 교회 청년인 달라스와 래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거지들, 화장(火葬)용 장작더미 위에서 타고 있던 16살짜리 소년, 그 절망감과 통곡을…. 그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나를 통해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가슴 벅찬 일은 그런 상황을 너희들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야.” 그들은 내 말에 동의했으나 예의 그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나왔다. “로렌, 우리는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는 선교사가 아니에요. 우리는 불도저를 미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랬다. “어떻게” 도와주는가가 문제였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라고 권유해 왔지만 현실적으로 우선 수년 동안의 학교과정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마칠 때쯤이면 그들의 불타는 열의는 식어버렸다. 젊은이들을 위해 어떠한 실제적인 길을 마련해 놓지 않고는 더 이상 그들에게 도전을 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인가 해야 할 때인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젊은이들을 모집해서 즉시 사역지로 보내야 한다. 몇 개월 혹은 1년 단기 선교를 위해 그들을 보내고 각자는 필요한 경비를 부담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 떠오르는 또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어떠한 사역을 하든지 한 교파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교회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모여 일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고가 구체적이고 분명해진 것에 대해 놀랐다. 마침내 우리는 선교단체의 이름을 Youth With A Mission(청년선교단)으로 정하고 1960년 12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나는 스프링필드에 가서 선교 담당자로부터 전문직 지원자들을 보내기만 한다면 그들을 잘 관리해줄 좋은 해외 선교 지부를 연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곧 리베리아로부터 소식이 왔다. 나환자들이 사는 마을까지 정글을 가로질러 길을 닦는 일을 할 중장비 운전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로 달라스와 래리를 생각했고 그들은 그해 1월 리베리아로 떠났다. 처음으로 두 명의 YWAMer(YWAM에 지원하여 일하는 사람들)가 사역에 들어섰다. 아직은 파도를 이루지 못했지만 시작은 한 것이다. 나는 수천 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달라스와 래리 같이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을 확신했다. 아내이자 친구인 동역자 우리가 YWAM을 시작한 지도 2년이 되었다. 어느 날 나는 한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YWAM이란 단체가 뭐하는 데예요?” 그 집 딸인 달린이 갑자기 푸른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저,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해외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해요.” 나는 사실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원자를 보냈나요?” “10명이오.” 내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듯했다. “참 훌륭한 착상인 것 같아요. 안그래요 여보?” 달린의 어머니가 나를 구제해 주었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의 그 처녀가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될 줄은 그땐 몰랐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줍어하지도 않고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게임을 벌이지도 않았다. 달린은 하나님의 성회 교회의 설교자와 선교사가 배출된 가정에서 자라온 사람이었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왜 갑자기 타지마할을 기억했을까? 나는 그녀의 생일날 그녀에게 반지를 주고 6개월 후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우리는 그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그 유일한 사역에 관해 분명한 인도하심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우리는 달린 부모님의 교회에서 전형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몇 년 전 타지마할 앞에서 나는 하나님께 동반자를 구했었다.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 속에서만 간절했던 소원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기도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름대로 선교에 부르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의 이 독특한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고 나의 가족과도 어울릴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달린은 모든 면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한 가지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녀 자신이 그 부르심 가운데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음 해에 하기로 한 바하마 섬의 ‘하기 봉사’는 겨우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지금 이 사역에서 3년째 일하고 있지만 달린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그냥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길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달린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았다. “로렌, 주님께서 다윗과 아비가일의 얘기를 통해 제게 응답해 주셨어요. 아비가일은 말하기를 ‘나는 내 남편의 시종의 발을 씻기겠다’고 했어요. 그게 저의 사역이에요. 종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의 발을 씻기는!” 나는 달린을 꼭 안아주었다. 달린은 YWAM에서 전임 사역자로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사역이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를 위해 독특한 사역을 준비하고 계신다.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그것을 들어야만 한다. 하기 봉사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되었다. 어느 날 나는 콜로라도 주에서 우리의 선교여행에 대해 수백 명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중 내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한 소년을 특별히 주목하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달린은 그때 청중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소년’에게 가서 하기 봉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말하라고 하셨다. 바로 그 소년이었다. 그녀가 소년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자 소년은 놀라며 “나도 지금 막 하나님께 제가 만약 가기를 원하신다면 누군가가 내게 개인적으로 찾아와 말해줄 것을 기도하고 있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바로 나중까지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된 돈 스티븐스였다. 푸른 파도, 거친 파도 우리는 버스로 대륙을 가로지르며 여러 곳에서 자원자를 더 태워 결국 146명의 젊은이들이 그 여름에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됐다. 우리가 이 섬, 저 섬을 방문할수록 우리의 기쁨은 풍선처럼 커져갔다. 어떤 부인은 난생처음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팀은 돌풍이 부는데도 불구하고 한 어부를 고용해서 어떤 섬으로 가고 싶어했는데 그 청년들이 기도했을 때 그들 앞에서 요동하던 바다가 잔잔해졌다. 그 어부는 너무 놀라서 그들이 육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보다 앞서 가서 마을 사람들을 부르며 “이 젊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소리질렀다.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사우 전 도시에서 대성회를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8월 22일, 클레오 태풍 1호가 대서양을 건너 본격적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풍이 그 섬을 강타했던 날 밤, 나는 문득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한 중요한 면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는 “네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그것은 곧 전도로 이어지며 또 다른 하나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우리 힘이 닿는 대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복음의 두 면이며 그것은 구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세차게 두드려대는 빗줄기처럼 내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나는 선교 사역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파악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전도와 구제사역이 조화를 이루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달린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섬의 원주민들과 판잣집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기도합시다.” 달린과 나 그리고 젊은 YWAM 청년(YWAMer)들은 고개를 숙이고 폭우로 그들이 가진 그 작은 것마저도 잃어버린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만일 먹을 것과 의복과 건축자재 등을 가지고 갈 수 있다면 우리 YWAMer들이 집을 다시 짓는 것을 도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그 많은 것을 옮기려면 배가 필요했다. 꿈같은 계획이 아닌가! 현재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없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무엇인가가 내 영혼에 심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 같이 사람들이 아프다고 느끼는 그 부분에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 너무나 자주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보살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데 있어 실패한다. 나는 클레오 태풍으로 인해 네 영혼에 심겨진 그 씨가 파종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했다. 본격적인 시작을 위한 열쇠 스프링필드의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인 토머스 짐머만과 만나게 된 것은 한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그는 바하마 섬에서의 실험적인 전도에 대해 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초교파적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교파 안에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추천했다. 좋은 자리였고 봉급도 꽤 많은 간부급 자리였지만 그 제안을 들었을 때 내 가슴은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나님, 정말 당신의 말씀입니까?’ 나는 재빨리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교파에서 모인 젊은이들을 파도처럼 선교를 위해 파송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총회장님,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과는 아주 다른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내 말에 동의는 했지만 그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앞으로는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고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성회의 목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올바른 일을 했다는 확신이 있었다. YWAM으로 돌아와 다시 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얼마 전 유방암 말기 선고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산드라 고모에 대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 총회장을 방문한 이후로 약간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우리들뿐이었다. 그것은 달린과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결혼한지도 4년 반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그 동안 매해 여름마다 수백 명의 단기 선교 자원자는 있었으나 전임 봉사자들은 달린과 나 외에 겨우 8명뿐이었다. 나는 이 사역이 완전히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보고 싶었다. 정말 이 꿈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라는 확실한 어떤 증거를 보기 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뉴질랜드가 그 꿈의 발사대가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나와 스탭 몇 사람을 실은 수상비행기는 수양회 장소인 뉴질랜드의 그레이트 베리어 섬에 착륙했다. 첫눈에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40대 초반의 부부가 나를 맞아 주었다. 남편 짐 도우슨은 사업가였다. 그의 아내 조이는 나를 방까지 안내하는 동안 명랑하게 재잘거렸다. 나는 강의하러 이 곳에 왔지만 이 외딴 섬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 수양회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자는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나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짐과 조이 도우슨을 포함한 강사 5명은 강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기도했는데,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같은 응답을 주실 것을 온전히 기대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주님께 여쭤보았다. 그때 내 마음 속에 친근한 음성이 내 주위에 있던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자 모두 준비되셨어요?” 인도자가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며 머리 속에 떠오른 이름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5명이 똑같은 응답을 받았다. 나는 속에서 흥분으로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날마다 우리는 이같은 특별한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았다. 나 외에 다른 4명은 이런 식으로 함께 수년을 기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세 명의 동방박사 이야기’ 같았다. 그들은 각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별을 따라갔지만 모두 다 함께 아기 예수께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그곳 일이 끝나고 우리가 탄 조그만 여객선이 그레이트 베리어 섬을 떠나 오클랜드로 전도 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기도했다. “아버지, 나는 어떻게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지 배우려고 하는 중입니다. 아버지께서 생각하시고 계신 다음 단계를 볼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내가 했던 첫 번째 설교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금식하고 기도하며 광야에 계셨다. 나는 문득 예수님의 생애로부터 한 가지 방식을 발견했다. “하나님, 제가 금식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순간 하나님의 응답이 떠올랐다. “네가 도착하는 날부터 7일 동안 사람들을 피하여 기도하기를 원한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사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수천 마일을 달려온 셈이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은 것입니까?” 나는 다시 여쭤보았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응답은 “도우슨 부부가 자기들과 함께 머물라고 요청해 올 테니 너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도우슨 부부는 내가 벌써 다른 곳에 머물 계획이 있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그런 요청을 할 리 만무했다. 조금 있으려니 사방이 어스름해지면서 저녁이 되었다. 짐 도우슨이 갑판 위 난간으로 나와 내 옆에 섰다. 짐이 입을 뗐을 때 나는 숨을 죽였다. “저, 로렌, 다른 친구들과 함께 머물 계획이 있는 줄 알지만 조이와 나는 주님께로부터 음성을 들었다고 믿어요. 우리와 함께 머물 수 있겠소?”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 나는 숨막힐 정도로 멋있는 항구 전경을 끼고 스칸디나비아식으로 지어진 도우슨 부부의 이층집 앞에 섰다. 짐은 아래층에 있는 손님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전화선을 끊은 후 침대 옆 녹색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거룩함에 대해 많이 들어왔지만 그 거룩함이라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올바르게 우선권을 정한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처음 이틀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한두 마디 말씀을 하셨다. 또 한동안은 주님과 함께 침묵을 즐기기도 했다. 금식 3일째 되는 날 비로소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영혼 수술’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엎드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은 날카로운 메스를 대셨다. “스프링필드를 기억하는가?” 나의 속마음이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곳의 교파 지도자들, 특히 짐머만 총회장에 대한 비판적인 감정들과 원망들이었다. 2년 동안 나는 ‘거절감’으로 괴로워했고 내 마음속에 나 자신의 뿌리까지 부인하는 마음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애쓰며 낭비한 모든 시간들이 인식되었다. 그 시간이 도적을 당한 것이다. 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긍휼을 구했다. 과거에 나의 지도자들이었던 분들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고, 그분들로부터 받은 영적 유산에 대해서도 감사했다. 칼날이 와서 가해지고 또 다시 가해졌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그 일이 계속되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행동했던 순간들을 생각했다. 옛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얘야,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사용하실 수 없단다.”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속의 죄인 성적인 공상들에 대해서도 지적하셨다. 나는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지었던 죄들을 하나하나 떠오르는 대로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고 그런 것들로부터 돌아설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영혼의 수술이 끝난 후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펜과 편지지를 찾아서 내가 써야할 편지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짐머만 총회장님...”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완전히 새롭게 정결해진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이 되어 금식기도를 서서히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어떤 전환점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 첫 번째 생긴 일은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다. 비바람이 몰아쳐 지하실로 물이 들어와 전도지 전부가 물에 잠겨버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 모두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도지를 빨랫줄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폴리네시안 빈민촌으로의 전도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본격적인 사역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구름 위로 올라가서 달린을 만나기로 한 하와이를 향해 30,000피트 상공을 날고 있었다. 지난 몇 주간을 돌이켜보면 마치 하나님의 학교에서 교육 받고 나온 기분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로부터 인도하심을 받는 새로운 원칙들을 배웠고, 이 원칙들을 적용해 보았다. 사실 그것은 우리 가족 안에서 배워온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달린과 나는 신앙적으로 대단히 풍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그 본보기를 보아 왔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남다른 이점들을 가진 셈이었다. ‘그렇다면... 가족적인 분위기로 신중하게 고안된 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갖게 되는 그런 학교가 있다면 얼마나 멋질 것인가!’나는 이 생각이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생각을 주시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탄 비행기는 달린의 비행기보다 먼저 도착했다. 나는 미국 본토로 돌아가 일에 빠져들기 전에 하와이에서 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 무척 기뻤다. 하와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동양과 폴로네시아인과 서양의 얼굴들이 어우러져 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와이는 정말 동양과 서양의 연결지점이었다. 달린을 만난 나는 뉴질랜드 도우슨 부부 집에서 일어났던 그 놀라웠던 ‘영혼의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기도했던 바로 그 기간에 달린도 금식하며 기도했고 그녀 역시 영혼의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둘을 인도하셨는가를 보는 것은 너무도 굉장한 일이었다. 또한 달린의 뱃속에서 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경이로웠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지 몇 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심한 감기로 통증과 열을 달래면서 아파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생각이 나를 스쳐갔다. “너는 학교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전도 전략 학교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이 생각은 없어지지 않고 점점 커져가다 또 다른 생각이 파고 들어왔다. “그 학교는 스위스에 세워질 것이다.” ‘스위스라니! 하나님, 정말 당신의 음성입니까?’ 스위스가 있는 유럽은 우리 YWAM의 활동이 전혀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확인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충격적인 방법으로 확인을 해주셨다. 어느 날 아버지가 친구 윌라드 씨와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가 전화로 내가 아버지와 함께 나와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나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나는 그와 악수를 끝내자마자 왜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 물었다. “로렌, 당신에게 전해줄 말이 있소. 주님께서 누군가가 스위스에서 학교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 마음 속에 심어주셨소. 그런데 어젯밤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이오.”‘동방 박사의 원칙’이 놀랄 정도로 또다시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가 스위스에 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배가됨 우리 아기가 태어나고 스위스에 다녀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낡은 호텔 하나를 임대했고 5개국에서 올 36명의 젊은이들을 맞을 계획을 추진시켰다. 학교는 1969년 12월 27일에 시작되었다. 돈 스티븐스와 그의 아내도 우리와 합류했다. 나의 경우 내 자신이 정결케 되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하나님의 능력이 풀려 역사하시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회개와 고백을 중요시해왔지만 YWAMer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고백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 주 후 ‘깨끗한 양심을 가진 후에 오는 능력’에 대한 강의가 끝난 다음 돈의 진실한 고백의 간증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렸다. 사람들 앞에서의 고백은 겸손과 일치를 가져오고 가족처럼 더욱 가깝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1970년 여름이 끝날 무렵, 우리는 알프스 산이 보이는 호텔 앞의 무화과나무 정자 아래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각국에서 온 36명의 젊은이들은 독일과 스페인, 프랑스, 영국,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이 겪었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자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YWAM과 함께 구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야에서 독립적이면서도 선교사역과 연결되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고 믿었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오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차례로 나는 돈 스티븐스를 바라보았다. “돈은 어떤 계획이 있죠?” 그들 부부는 몇 주 동안 기도했는데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나는 거의 포기했었어요. 그러다가 점심시간에 침대 위에 놓여 있던 ‘타임’지를 집어 들어 2년 후 독일 뮌헨에서 있을 ‘뮌헨 여름 올림픽’ 장소를 짓는 사진을 보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얼마 전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수천 명의 청년들이 동부 베를린에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소름끼치는 일이었죠. 그 청년들 눈에는 빛이 없었어요. 마치 죽은 자들이 행진하는 것 같았지요.” 그는 나를 건너다보았다. “로렌, 그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뮌헨에서 크리스천들의 행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철의 장막과 양편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얘기할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 말을 듣자 뭔가가 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흥분의 외침과 동의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학교에서 이처럼 중요한 아이디어를 주신 것이다. 성공 후에 따르는 위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칙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런 고통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원칙은 주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이든지 우리를 승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지만 성공 그 자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는 데 있어서 가장 위험한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난 2년간을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쉽게 일들이 진행되어 왔는가를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원칙을 발견했고 그 원칙은 적용되었다. 나는 자신만만해 있었다. 뮌헨 외곽에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화려한 6층짜리 옛 성을 믿을 수 없이 싼 값에 계약할 수 있었고 그곳에 전단지를 찍을 대형 인쇄기도 미리 설치해 놓았다. 뮌헨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기 4개월 전인 1972년 3월, 나는 한 번 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서 젊은이들에게 뮌헨에서 있을 3주간의 전도 여행에 참석하도록 권유하고 다녔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나님께서는 올림픽 전도 여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먼 장래에 일어날 일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이다. 서울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창문을 내다보는데 중국땅이 보였다. 그때 돌연 하나님의 음성이 내 생각을 가로질러 들려왔다. “배를 사도록 하라.”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당신이십니까, 하나님?” 이것이 자동적인 질문이었다. 배라면 수년 전 바하마 선교여행 때 그 필요를 절감했던 적이 있었지만, 배를 사려면 숙련된 선원과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하나님, 만일 지금이 시작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몇 주 후 나는 뉴질랜드의 젊은이들에게 뮌헨 전도여행에 관한 설명을 막 끝내고 짐과 조이 도우슨, 칼라피 그리고 나와 가까운 지도자들을 만나 상해 상공을 날던 비행기에서의 경험을 얘기했다. 우리는 모여서 기도했다. “주님,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배에 적합한 사람들을 모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당신이 아십니다.” 그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한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격이 없는 사람을 선교에 부르시는 걸까요?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바다에 관한 것뿐이에요. 나는 오랫동안 일등항해사와 선장으로 지냈지요.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에 부르신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응답하시는 데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항해사는 우리가 금방 일거리를 제공할 수 없는데도 당장 일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사역은 뮌헨 전도 여행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위해 행진하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주고 계셨다. 뮌헨: 세계의 축소판 뮌헨 올림픽이 진행되는 3주 동안 1,000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도착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매일 돈 스티븐스의 지도하에 500명의 젊은이들이 뮌헨의 거리에서 전도하고, 그 동안 나머지 500명은 나의 지도하에 성에 남아서 가르침과 중보기도와 성경읽기 등으로 새로운 충만함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첫날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재미나 보고 경쟁이나 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축제를 방해하는 것 같은 힘든 과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스포츠는 커다란 우상이었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 인류애’라는 우상이 깨어지고 무너졌을 때에야 뭔가가 가능했다. 9월 5일 화요일 아침, 아랍 테러분자들이 선수촌을 부수고 들어가 2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죽이고 9명을 인질로 잡았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곧 난폭한 폭발 사건이 있은 후 9명이나 더 되는 이스라엘인과 5명의 아랍인 그리고 한 명의 독일인이 살상되는 것으로 끝났다. 올림픽 축제는 하룻밤 사이에 장례식으로 변했다. 거리에서 떼지어 몰려다니던 사람들은 갑자기 갈길을 잃었다. 갑자기 우리 젊은이들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이 열렸다. 우리의 거리 행진을 막았던 당국자들도 행진을 허락해 주었고 어떤 사람은 정원에서 꺾은 수천 송이의 꽃을 갖다주면서 행진할 때 나눠주라고 말했다. 우리 인쇄기로 찍어낸 신문들은 우리 손으로 나눠줄 새도 없이 집어가고 없었다. 한 신문에는 아랍 YWAMer들과 이스라엘 YWAMer들이 같이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과 함께 세계 인류애를 유지하는 유일한 답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란 것을 전파하는 특종 기사가 실렸다. 뮌헨 올림픽은 이렇게 대단원을 내렸다. 올림픽이 끝남으로 인해 나의 관심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배를 구입하도록 추구할 때라고 말씀하신지 13개월 만인 1973년 4월에 나는 마오리 호를 조사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향했다. 우리는 벌써 선장과 다른 선원들을 확보했고 그들은 현재 로잔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 배는 전해들은 그대로였다. 하얀 간판 위에 주황과 푸른색의 굴뚝 그리고 450피트 가량의 검은 배였다. 그 배는 웰링턴의 언덕 아래에 늠름히 떠 있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온 우리의 운명과도 같은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는 여러 번 그 일을 추진하라는 신호와도 같은 것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범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실수 가운데로 한 걸음 내딛고 있다는 것은 눈곱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당장은 모든 것이 정말 잘 진행되는 것 같아 보이는 인도하심을 받고 있을 때 그 모험에 있어서 후반부에 저지르게 되는 실수였다. 어두운 그늘에 묵묵히 서 계시던 분 나는 하나님께서 마오리 호를 사도록 급작스럽게 인도하시는 것 같이 보였으므로 배를 본 지 4개월 후에 72,000달러의 계약금과 함께 잔액은 30일 내에 주기로 예약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영국의 한 사업가로부터 전화가 와 하나님께서 YWAM을 위해 무엇인가 자기에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으며, 그가 보낸 돈의 액수는 우리의 계약금보다 많은 액수였다. 세간의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되었고 우리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는 언론 기관과의 인터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또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발언을 했고, 신문에까지 “YWAM 젊은이들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를 주실 것이다’”라는 머리기사가 실렸다. 우리는 한 달 후 잔금만 치르면 그 배로 뉴질랜드에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항해할 것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공중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날마다 새로 일어나는 일들을 단순히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일의 진행을 좀 늦추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사실 나에게는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과 홀로 지내는 일주일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주간에 모든 것이 뒤바꿨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히브리서의 말씀을 펼쳐 놓은 채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12장 26절, 27절 말씀이 그 장에서 튀어나오듯이 내 눈에 들어왔다.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마치 바위로 내 명치 끝을 탁 치는 것 같았다. “오, 안 돼! 설마 이 말씀이 배에 관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겠지?” 다음날, 적지 않게 걱정을 하면서 나는 캘리포니아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 배 매입 건으로 들어온 돈 있습니까?” 나는 물었다. “하나도 없어요, 로렌.”약속했던 마닐라 사업가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당황했다. 히브리서의 그 말씀이 배에 관한 말씀이란 말인가! 그 주간의 나머지 날 동안 기도하면서 나는 이 분명한 경고의 말씀을 가지고 씨름했지만 아무 것도 분명해지지 않았다. 3일 후면 오사카로 날아가야 했고, 배의 잔금을 치를 날짜도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나는 기도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나는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하시기 원하시는 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돌연 머릿속으로 한 그림이 보였다. 나는 YWAM 지도자들의 무리 앞에서 기쁨에 넘쳐 환호하고 있었다. “우리는 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오리호를 사기 위한 돈을 주셨습니다!” 군중들은 크게 환호하며 팔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갑자기 나는 내 왼편 그늘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 중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애통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분은 예수님이셨다! 우리는 그분을 무시해오고 있었다! 배에는 환호를 보내고 박수를 치면서 예수님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소름끼치는 장면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아니 우리는 그 배를 소유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울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용서해 주셨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할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월요일 오사카에서 지도자들에게 이 침울한 메시지를 전했다. 모든 사람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일치된 것이었다. 우리는 Youth With A Mission이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도구’이며 우리는 ‘가장 영적인 선교 단체’이며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에 관해 더 많이 배워 왔고,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특별한 방법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았고, 그것은 메스꺼울 정도로 더러운 것이었다. 나는 어쩔 바를 몰랐다. 오직 우리가 때를 맞추어 회개한 것이기를 바랬고, 이제는 우선권을 올바로 정하여 도구로부터 우리의 눈을 돌려 하나님을 향하여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고치시고 여전히 우리에게 배를 주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이 도우슨은 내게 전화로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께서는 기다리셨다”고 말했다. 먼저 마오리에 대한 우리의 계획이 완전히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과 함께 우리도 죽어져야만 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세 가지 단계 배에 대한 우리의 꿈은 죽었다. 우리 단체에 대한 평판도 무참히 손상되었다. 미리 모집했던 60명의 선원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흔드시겠다고 한 히브리서 말씀을 읽은 바로 그날 이래로 헌금은 1달러도 들어오지 않았다. 달린과 나를 가장 불안정하게 만든 것은 분명한 방향제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돌파구를 찾는 시간이 하와이에서의 어느 놀라운 밤에 시작되었다. 배에서 열기로 했던 학교는 취소되었지만 그곳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90명의 젊은이들은 고맙게도 대신 하와이 YWAM학교로 와 주었다. 나는 철야기도를 하기로 결정하고 3명의 스텝인 지미, 제니, 그리고 레오나 피터슨에게 나와 함께 기도하기를 요청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조이 도우슨에게 배웠던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는 세 가지 단계를 따랐다. 첫 번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세로 사탄의 소리를 잠잠케 하도록 명령하고, 두 번째는 어떤 상상이나 미리 갖고 있던 생각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깨끗케 해주시라고 주님께 구했다. 세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때와 방법으로 말씀하실 것을 믿으며 조용히 기다렸다. 새벽 3시 30분을 지나고 있을 때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는 ‘코나’라는 단어였다. 나는 그 곳에 한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그 곳이 빅 아일랜드에 있는 장소라는 것은 알았다. 두 번째는 빅 아일랜드에 있는 등대의 그림 같은 것이 마음 속에 보였는데 그 등대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까지 그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관심사는 오로지 배에 대한 꿈이 부활하는 것에 대해서였던 것이다. 이제 시계는 아침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생각은 이 모든 새로운 정보들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 공부 시간이 되어 그곳에 참석한 90명의 젊은이들에게 동일한 기도를 부탁했을 때 거기에서 나온 응답도 등대, 큰 학교, 빅 아일랜드 - 코나, 만에 떠 있는 하얀 배였다. 배를 잃어버린 지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교육을 마치고 스위스로 돌아왔으나 나는 마음을 한 곳에 모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돈은 그곳 일을 잘 해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들을 배가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돈이 이 지부의 지도자였다. 나는 내 자신의 새로운 모험을 찾아 옮겨가야 할 때가 되었던 것이다. 달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창문 밖으로 1월의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흔들릴 수 있는 것은 그가 흔드시겠다고 하신 이래로 4개월 동안 겪은 아픔을 생각했다. “여보, 나는 한번도 이렇게 방향도 없이….” “알아요, 여보. 우리는 우리 도끼머리를 잃어버린 거예요.” 나는 달린이 어떤 인도하심을 받는 원칙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엘리사의 생도 하나가 그의 도끼의 머리 부분을 잃어버렸다. 엘리사는 그 젊은이에게 가르쳐 주기를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던 그 마지막 장소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 마지막 장소에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필요로 했던 그 연장을 다시 주셨다. 때때로 우리는 순간적으로 우리 도끼의 머리 부분을 잃어버린다. 즉 가장 날카롭게 자르는 도구인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놓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우리가 그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그 곳으로 돌아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떤 곳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마지막 장소일까? 나는 분명히 보았다. “달린,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가 우리 도끼의 머리 부분을 가졌던 마지막 장소는 하와이 철야기도했던 곳이오.” 배를 포기하지 말라 달린과 내가 빅 아일랜드 코나에 있는 호텔로 이사해 온 지 약 2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돈 스티븐스를 방문했다. 돈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배에 대한 비전을 다시 일으키고 계신 게 아닌가 생각돼요.” 돈은 이탈리아의 베니스에 위치해 있는 빅토리아 호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크고 오래된 배로 발전기도 돌아가지 않는 11,000톤짜리 여객선인데 배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을 거예요. 손봐야 할 부분은 많겠지만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돈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배에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요.” 나는 물었다. “돈, 배가 무슨 색깔이죠?” “하얀 색이었어요.” 돈이 말했다. 그리고 약 2달 후 폴 아인스워트라는 남자가 빅 아일랜드에 와서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물어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경험한 이상한 일과 환상이 나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토론토의 한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의 눈앞에 남태평양 지도가 나타났다. 그가 보는 환상 가운데 하얗고 커다란 배가 떠 있었다. 그 배는 하와이 섬들로부터 출발해 남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가 태평양을 통과할 때마다 부흥이 일어났어요. 수천 명의 남태평양 연안 섬 주민들이 복음을 듣고 자신들이 전도자가 되어 동남아시아와 인디아, 그리고 중국까지 갔습니다. 수백만이 주님을 알게 되었지요.” 그의 말을 듣자 나의 온 몸에 전율이 왔다. 내가 듣고 있는 사실을 거의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이 너무 빨리 그리고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돈이 처음으로 빅토리아 호에 관해 이야기한 지 3개월 후에 우리는 배 소유주들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님께서 돈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도록 완전히 맡겨놓았다. 그것이 나 개인적으로는 마오리를 통해 배운 영적인 신중함과 폴 아인스워트 씨의 비전을 듣고 가진 담대함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한 달 후 돈이 베니스로부터 전화를 했다. 그는 아주 흥분하고 있었다. 배 소유주들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정부 당국자도 동의했다. 한편 그러는 동안 마치 현미경에 초점이 맞춰지듯 우리 대학교에 대한 개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두 가지 일에 대해 염려가 됐다. 물론, 돈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러나 사실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인도는 너무 극적인 것이어서 주님에게보다 일 자체에 영광을 돌리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하심을 받는 첫 번째 목표는 우리를 예수님과 더욱 가까운 관계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모든 다른 목표는 그것에 보조적인 것이어야 한다.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가? 우리는 배 이름을 아나타시스(ANATASIS)라고 정했다. 아나타시스는 희랍어로 ‘부활’이라는 뜻이다. 배에 모인 우리 YWAMer 60명은 미래 선교와 구제 사역의 도구가 될 배에 대한 문제들을 놓고 기도했다. 아나타시스 호의 방문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짐과 조이 도우슨 부부의 27살난 아들인 존이 내게 말했다. “타임지에서 베트남을 빠져나온 피난민에 관한 기사를 최근에 읽었는데, 이 보트 피플은 물이 새는 보트를 타고 베트남을 빠져 나오다가 중간에 해적을 만나거나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아니면 뗏목을 타고 표류하게 된대요. 이웃 나라에 있는 난민 수용소는 열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죠. 로렌, 나는 그 기사의 제목을 머리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어요. 그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의 몸에게 던지는 질문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느끼시는 마음일 거예요. 그분은 울고 계세요.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가’라고 하시면서.” 존의 도전이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이것이 15년 전 클레오 태풍 때 이후로 내가 꿈꾸어왔던 구제 선교 사역의 시작이 아닐까? 드디어 우리는 YWAM 젊은이들을 난민 수용소에 보내게 되었다. 돈의 남동생인 게리 스티븐스는 30명이나 되는 그룹을 이끌고 주빌리 수용소로 가 난민들도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오물을 삽으로 퍼내고, 부서진 하수관을 고치거나 화장실을 고쳤다. 자비(自費)로 수용소까지 와서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는 것이었다. YWAMer들은 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이 바라던 그런 기회들이 주어지고 있었다. 곧이어 YWAM팀은 수용소 담당자들로부터 학교를 열고, 성경공부 시간을 갖고, 상담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의 창고를 열기 위해서 이 특별한 순종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보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봉사자들이 떼지어 몰려들었다. 수백 명의 젊은 YWAMer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열망하던 문이 열린 것이다. 경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왔다. 의사들, 간호원들 그리고 숙련된 기술자들뿐 아니라 붕대를 감는 작은 일도 기쁘게 할 사람들과 난민 청소년들을 가르칠 사람들도 오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행동과 말을 통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YWAM도 역시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전 세계에 걸쳐 하나님께서 점점 더 많이 재능 있는 사람들을 더하시고, 사역의 문도 열어주셨다.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앨 아키모프를 1980년에 복음 전파를 위해 소비에트 연방에 보냈다. 플로이드 맥클랑과 그의 가족은 창녀와 남창들이 있는 암스텔담의 홍등가로 온 가족이 옮겨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와 같은 지역을 책임지게 되었다. 영적 배가의 법칙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었다. 브라질에 있는 YWAMer들은 보고하기를 전도 학교(SOE)에서 훈련 받은 젊은이들이 각자 자신의 개척지로 나아가려고 자신들을 헌신하고 있고, 소외된 인디언 부족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 아마존으로 올라가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달린과 내가 하와이에서 환상을 통해 미리 알았던 것처럼 우리의 관심은 아시아로 향했다. 우리는 팀을 방문하기도 하고, 전도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며, 전임 사역자로 자라는 1,800명의 우리 가족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했다. 나는 대학교 비전이 아직도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확고히 믿으면서 여전히 나의 원래 중심지인 코나 베이스를 책임 맡고 있었다. 우리는 캠퍼스나 건물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부터 시작했다. 태평양 아시아 기독교 대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방을 빌리고, 저곳에서 모임 장소를 빌리고, 또 다른 곳에서 아파트를 빌려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상담, 성서에 바탕을 둔 심리학적인 훈련, 준의료 활동 훈련, 학령전 아동을 위한 교사 훈련, 과학, 제3세계로 가기 위해 발판이 될 기술학, 그뿐만 아니라 성경 연구학교, 선교학과 교회 사역 등의 과정을 시작했다. 태아와 같은 단계에 있는 이 학교들은 코나 해변가를 따라, 우리의 장소로 발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진행돼 가고 있었다. 물고기 이야기 배와 대학교 이 두 가지 사역은 서로 밀접하게 뒤따르면서 진행되었다. 모든 YWAM 사람들이 배를 위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치르는 데 동참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데서 헌금이 들어오기도 했고 세계 각국의 여러 단체에서도 기금이 들어왔다. 아테네의 선상에서 돈과 디욘 그리고 175명의 단원들은 돌아가면서 40일 금식을 시작했다. 그 40일간의 영적 훈련이 막 끝나가던 날 물고기들이 45분 동안 아나스타시스가 정박해 있는 육지로 튀어오르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그것이 아나스타시스의 구제 사역이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라는 신호로 받았다. 그리스 사람들조차 말하기를 그와 같은 일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경탄하며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 아테네에서의 바다 항해 시험은 걸리는 것 없이 순항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나스타시스 호는 닻을 끌어올리고 1982년 7월 7일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로 오고 있었다. 나는 2000명이 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여러 교파와 교회에서 온 많은 사람들은 배가 도착하는 것을 보기 위해 정박구에 모였다. “거룩, 거룩, 거룩!” 대형 스피커를 통해 찬양이 울려퍼지자 그들은 모두 울면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돈은 내가 18년 전에 받은 이 비전을 실현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일을 해냈다. 하나님을 더 알아 간다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기쁨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더불어 일하시면서 이처럼 귀한 것으로 인도하시는 그 주님을 지켜보는 이 말할 수 없는 기쁨!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 뒤에 있는 대학교와 우리 앞에 있는 배, 이것은 주 예수님 자신의 기쁨과 승리의 함성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는 너무나 확실했다. 우리는 마침내 인도하심을 받는 모든 가르침 중의 가장 큰 것을 배웠다. 그것은 바로 그분을 좀더 깊이 알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신의 모험에서부터 나온 것이었다.
2012-12-07 00:25:50 / 201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