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로렌 커닝햄 [책소개]
  • 샬롬
    조회 수: 6089, 2012.12.06 17:25:50
  •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로렌 커닝햄제니스 로저스 지음/예수전도단 옮김

     

     

     

    번쩍이는 것이 금은 아니다

     

    나는 팜비치에 있는 산드라 고모 집의 넓은 대리석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호킨스 아저씨가 나를 안내했다. 눈길은 가죽 의자 옆에 세워 놓은 지구본에 멈췄다. 짧은 순간, 스무 이후로 지금까지 동안 마음 속에 살아 있는 특이했던 환상이 머리를 스쳤다. 선교 사역을 하는 주의 청년들이 세계 모든 대륙의 해안을 행진하면서 물결처럼 대륙들에 상륙하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명령이라고 생각할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전’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혹시 내가 가진 비전도 하나님을 위해 크게 역사를 일으킬 있는 특별한 인도하심들 중의 하나가 있을까?

     

     

    나는 산드라 고모에게 세계여행을 통해 내가 젊은 선교사들에 대해 말씀드렸다. 산드라 고모는 일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다. 산드라 고모는 어렸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뒤로 제쳐놓고 싫어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에게 나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있을까? 고모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전에 산드라 고모를 실망시켰던 부분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에 대해 정말 정직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텍사스 우발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매우 안락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즉시 세탁소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직업을 가진 텍사스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주말에만 시간제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위기에 부딪히게 되었다. 1916 무렵 무서운 천연두가 나돌고 있었는데 부인과 아들이 ( 남자아이와 명의 누나들이 있었다) 병에 걸렸다. 2 동안 커닝햄 할아버지는 부인과 아이들 침대 옆에서 밤을 지샜으나 할머니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놀랍게도 슬픔을 당한 얼마 되지 않아서 커닝햄 할아버지는 전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딸인 산드라 고모를 크게 실망시킨 것은 할아버지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벌써 그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적인 인도하심이 있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계속해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최선을 놓칠 수도 있다. “무엇을 하라.”는 인도하심을 후에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를 알아야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에는 순종했지만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았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인도를 계속적으로 구했다면 아마도 잇따라 일어났던 고통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순회 성경 교사로서 일하기 원하셨다. 그는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할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각각 다른 집에 맡겼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결정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산드라 고모와 아르네트 고모는 그들이 어렸을 겪었던 어려움과 슬픔을 할아버지의 “어리석은 부르심” 탓으로 여겼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로 결심했고, 성장한 뒤에는 각자 원하는 길을 갔으며 사업에 몰두하면서 최선을 다해 돈을 벌었다. 그것이 어머니와 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들의 보상책이었다. 그들은 성공했다. 산드라 고모는 3개의 저택을 소유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톰은 아들 맏이였는데, 어린 시절 집을 아홉 군데나 옮겨 다니면서 어렵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도 열일곱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남서부를 두루 다니며 부흥집회를 열었다.

     

     

     

    가족으로부터 이어받은 유산

     

    나의 아버지 커닝햄은 다른 순회 전도자 가족의 셋째 주웰에게 매혹되었다. 그녀는 12살이던 어느 늦은 여름날 오후 시냇가 위에서 기도하던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한 음성으로 “나는 네가 복음을 전파하기 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17세가 되었을 설교자가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달을 노력한 후에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릴 있었다. 신혼부부인 부모님은 도시, 도시를 여행하면서 거리에서나 간이 정자 밑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때로는 분명한 소리로, 때로는 마음에 확실하게 다가오는 인상으로 들을 있는 내적인 음성에 친숙했다. 또한 그들은 말씀을 통해서나 꿈과 환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도 익숙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실 때면 아버지는 “우리는 예수님의 긴급 명령을 이루는 종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 그것이 열쇠이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모든 곳에 가서 복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셨다면 그분은 분명히 우리가 가야 곳도 친히 인도하실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어디든지 갔다.

     

     

    1933년에 나의 누이 필리스가 태어났고, 2 후에 내가 태어났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먼지 많고 사막 같은 아리조나의 시골, 사방 10피트의 텐트 속에서 상자들을 가구로 삼고 살던 일들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불우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자랐다. 부모님은 하고 계신 사역과 하나님의 음성에 기울이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 우리도 동참시키셨다. 6 어느 저녁 집회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는 확신을 가졌고, 처음으로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10살이 이후로 아버지는 나에게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에는 내가 집을 돌봐야 한다고 말씀해 오셨다. 즈음 슬픈 소식을 듣게 것은 전화를 통해서였다. 집을 떠나 있던 아버지가 맹장염에 걸리셨는데 수술을 하지 못해 복막염으로 이미 번졌을 가능성이 있고 전쟁 기간이라 페니실린도 없는 상황이므로 돌아가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전화기를 내려놓으시고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간절히! 나는 소파 뒤로 기어가서 시간 동안 거기서 기도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 후에도 아버지의 상태는 여전했다. 우리가 계속해서 붙잡을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떤 말씀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결코 잊을 없는 사건이 생겼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은 3 후에 누군가 우리 문을 두드렸다. “커닝햄 자매님, 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남편이 관에 실려 집에 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분 나쁜 남자가 말했다. “여기까지 오셔서 이렇게 일러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걸음이었는지도 이해하구요.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께 여쭤보고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것인지 알아보겠어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하시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아주 단호했다. 그리고는 신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 후에 현관문을 닫으셨다. 그리고는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만약 꿈이 당신께로부터 것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단지 그것만 알려주세요. 그게 제가 알고 싶은 전부입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계셨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 아버지다운 방법으로 대답해 주실 것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기대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어제 꿈속에서 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잠옷차림으로 집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확하게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회복되어 어머니의 꿈대로 침대차를 타고 잠옷 차림으로 도착한 것이다. 전쟁 중이라 좌석을 예약하기가 불가능했지만 친구 덕분으로 침대차를 얻어 있었다.

     

     

    후에 어머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있어서 중요한 면을 지적하셨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야.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씀하신다면 우리에게 직접 하실 거야. 가족으로부터 이러한 유산을 이어받은 역시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부르심에 따라 일하는 동안,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알고 있었던 지극히 작은 지식까지도 모두 활용되었다.

     

    우리의 인생을 바꿔 놓은 어린 소녀

     

    어느 저녁 어머니의 설교가 끝난 후에 나는 삼촌 교회의 강대상이 있는 난간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돌연 몸이 하늘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 들었고 눈앞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있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 15절의 지상 명령이었다!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말씀이 앞에 있었다.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그런데도 불타오르는 같은 말씀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내가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아마도 해외 선교사로 부르셨던 같다. 왜냐하면 앞에 있던 말씀은 “온 천하에 다니며”였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 어머니를 찾았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내게 일어났던 일을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싱긋이 웃고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날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가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이 가게에서 제일 좋은 구두를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에게 말했을 나는 놀라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신은 아직 신을 만했다. 어머니는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우리가 축하하는 거야, 로렌! ‘좋은 소식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성경 말씀에 아빠와 내가 얼마나 동감하는지 네게 보여주려는 조그만 표시란다.

     

     

    15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아침, 나는 교회의 나무 의자에 앉아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 속은 여러 동안 신문배달을 해서 돈으로 나중에 차를 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설교의 어떤 부분에 정신을 집중했을 , 며칠 번째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아랍 소녀에 관해 말씀하고 계셨다. “아랍 소녀는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거지에 불과했지만, 나는 평생 아이의 얼굴을 잊을 없을 같습니다. 구걸하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아이는 동전 이상의 깊은 것을 요구하는 듯했다. 위로, 격려, 사랑,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 그것은 바로 복음이었다. 잠시 말씀을 멈췄을 나는 아버지가 울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세계 선교는 단순히 말에 그쳤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제부터 선교는 아랍 아이의 얼굴 같이 구체적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마쳤다. 나는 새로운 흥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변화된 사람은 아버지 혼자가 아니었다. 1 알칸사스 삼촌의 교회에서 앞에 씌어 있던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온 천하에 다니며…. ! 지금 당장 내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모아 40달러를 선교를 위해 헌금하기로 마음먹었다. 세미한 무엇인가가 마음을 요동시키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계속되는 내적인 음성은 인생이 자동차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19살이 되던 1954 가을 누나 필리스와 나는 닷지 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나는 미주리의 스프링필드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 신학대학에 가기로 결정했고, 누나는 센트럴 성경학교에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10살난 제니스는 집앞 보도에서 우리가 짐을 싣기를 기다리며 있었다. 아버지께서 우리가 영육간에 안전하도록 기도해 주시는 동안 우리 다섯 식구는 동그랗게 모여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차를 몰고 모퉁이를 때는 입술을 깨물어야 만큼 가슴이 뭉클했다. 일생을 두고 하게 어떤 모험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물결치는 파도

     

    바하마 여행은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곳에서의 특별한 체험은 인생을 결정하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주리 주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와 명의 친구들은 복음송을 부르는 4중창단을 만들었다. 우리는 방학을 이용해서 가까운 스프링필드 지역을 벗어나 좀더 곳으로 여행하곤 했는데, 한번은 바하마 섬의 수도인 나사우(Naasau) 택했다. 찬양 공연 중간 중간에 우리는 그곳의 선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십대 청소년 명이 선교 사역을 위해 와서는 소녀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시간을 보냈고, 일로 이제 섬에는 온갖 좋지 못한 소문이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날 나는 선교사 사택에 누워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 하던 대로 하나님께서 마음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이어 일어난 일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내가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도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다. 그것은 마음으로 보는 영화 같은 것이었다. 모든 대륙을 한눈에 있었다. 파도가 해변에서 대륙으로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고 그리고 깊이 밀려 들어와서 대륙을 완전히 덮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내가 장면을 지켜보는 동안 그것은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 파도들은 나이 정도의 젊은 사람들이나 혹은 나보다 어린 청소년들로 변하여 대륙들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에서나 음식점, 혹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한푼을 구걸하는 어린 아랍 소녀를 돌보는 같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면은 사라졌다.

     

     

    !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주님! 환상이 정말 당신께로부터 것입니까? 놀라운 일이었다. 청소년들이 선교사로 나간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환상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것이라면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던 미국 청년들 문제 같은 것은 피할 길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젊은이들의 힘을 사용할 어떤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하나님께서 내게 환상을 보여주었을까?’‘나의 미래는 젊은이들로 파도와 무슨 연관이 있게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에게도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먼저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확실한 부르심을 주시면 그것에 대한 시험이 기간이 뒤따르게 하시기 때문이었다.

     

     

    주일 오정쯤 우리는 떠날 준비가 끝났다. 나는 공중전화로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떠나기 동안이라도 고모를 만나뵐 있는지 물어보았다. 고모는 아주 친절했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해에 아버지와 아르네트 고모, 산드라 고모는 다시 만나서 화해하셨다. 정말 행복한 재회였다.

     

     

     

    조촐한 시작

     

    24살이 되던 , 나는 대학을 마치고 가족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어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얘야,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네가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너를 쓰실 없단다.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학교 졸업반이었을 학생회 회장이었고 하나님의 성회 목사로서 안수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청년부 지도자라는 좋은 직책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만이라니…. 어머니는 정곡을 찌르시는 분이긴 하지만 이번만은 잘못 보신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당시 나는 나의 일을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지도하는 청년들은 모두 똑똑하고 열심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젊은이들을 위해 세운 활동 계획들의 대부분이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도전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특히 10대와 20 초반의 젊은이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도전이었다. 나는 바하마 섬에서 보았던 신기한 환상을 다시 기억했다. 후로 벌써 4년이 지났다. 비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착잡했다. 무엇인가 해야 때다. 바하마 섬에서 보았던 파도가 밀려오는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알아보아야만 했다.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 얼마 동안 여행하면서 해외에 어떠한 가능성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일 것이다.

     

     

    그러고 떠난 여행 중에, 인도의 어느 외딴 섬에서 나는 수백만이 나와는 전혀 다른 신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있었다. 어둡고 무척 더운 , 16살짜리 소년이 칼싸움 하다 죽임을 당해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장작더미 주위에 있던 사람들 속을 채우던 무기력함과 절망감을 결코 잊을 없었다. 나는 가슴을 휘젓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그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교회 청년인 달라스와 래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거지들, 화장(火葬) 장작더미 위에서 타고 있던 16살짜리 소년, 절망감과 통곡을…. 그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나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가슴 벅찬 일은 그런 상황을 너희들이 변화시킬 있다는 거야. 그들은 말에 동의했으나 예의 피할 없는 질문이 나왔다. “로렌, 우리는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는 선교사가 아니에요. 우리는 불도저를 미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랬다. “어떻게” 도와주는가가 문제였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라고 권유해 왔지만 현실적으로 우선 수년 동안의 학교과정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마칠 때쯤이면 그들의 불타는 열의는 식어버렸다. 젊은이들을 위해 어떠한 실제적인 길을 마련해 놓지 않고는 이상 그들에게 도전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인가 해야 때인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젊은이들을 모집해서 즉시 사역지로 보내야 한다. 개월 혹은 1 단기 선교를 위해 그들을 보내고 각자는 필요한 경비를 부담한다. 그리고 마음에 떠오르는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어떠한 사역을 하든지 교파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교회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모여 일할 있도록 개방해 놓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고가 구체적이고 분명해진 것에 대해 놀랐다.

     

     

    마침내 우리는 선교단체의 이름을 Youth With A Mission(청년선교단)으로 정하고 1960 12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나는 스프링필드에 가서 선교 담당자로부터 전문직 지원자들을 보내기만 한다면 그들을 관리해줄 좋은 해외 선교 지부를 연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리베리아로부터 소식이 왔다. 나환자들이 사는 마을까지 정글을 가로질러 길을 닦는 일을 중장비 운전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로 달라스와 래리를 생각했고 그들은 그해 1 리베리아로 떠났다. 처음으로 명의 YWAMer(YWAM 지원하여 일하는 사람들) 사역에 들어섰다. 아직은 파도를 이루지 못했지만 시작은 것이다. 나는 수천 명도 되는 사람들이 달라스와 래리 같이 해외로 나가게 것을 확신했다.

     

    아내이자 친구인 동역자

     

    우리가 YWAM 시작한 지도 2년이 되었다. 어느 나는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YWAM이란 단체가 뭐하는 데예요? 딸인 달린이 갑자기 푸른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저,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해외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해요. 나는 사실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원자를 보냈나요? 10명이오.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듯했다. “참 훌륭한 착상인 같아요. 안그래요 여보? 달린의 어머니가 나를 구제해 주었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의 처녀가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줄은 그땐 몰랐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줍어하지도 않고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게임을 벌이지도 않았다. 달린은 하나님의 성회 교회의 설교자와 선교사가 배출된 가정에서 자라온 사람이었다. 그녀를 순간 나는 갑자기 타지마할을 기억했을까? 나는 그녀의 생일날 그녀에게 반지를 주고 6개월 후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우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유일한 사역에 관해 분명한 인도하심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우리는 달린 부모님의 교회에서 전형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타지마할 앞에서 나는 하나님께 동반자를 구했었다.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 속에서만 간절했던 소원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기도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름대로 선교에 부르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의 독특한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고 나의 가족과도 어울릴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달린은 모든 면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녀 자신이 부르심 가운데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낼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음 해에 하기로 바하마 섬의 ‘하기 봉사’는 겨우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지금 사역에서 3년째 일하고 있지만 달린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그냥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길 원했다. 그러던 어느 달린은 자신이 해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았다. “로렌, 주님께서 다윗과 아비가일의 얘기를 통해 제게 응답해 주셨어요. 아비가일은 말하기를 ‘나는 남편의 시종의 발을 씻기겠다’고 했어요. 그게 저의 사역이에요. 종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의 발을 씻기는! 나는 달린을 안아주었다. 달린은 YWAM에서 전임 사역자로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번째 사람이었다. 사역이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를 위해 독특한 사역을 준비하고 계신다.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그것을 들어야만 한다.

     

     

    하기 봉사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되었다. 어느 나는 콜로라도 주에서 우리의 선교여행에 대해 수백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소년을 특별히 주목하게 되었다. 나중에 일이지만 달린은 그때 청중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소년’에게 가서 하기 봉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말하라고 하셨다. 바로 소년이었다. 그녀가 소년에게 이야기를 전하자 소년은 놀라며 “나도 지금 하나님께 제가 만약 가기를 원하신다면 누군가가 내게 개인적으로 찾아와 말해줄 것을 기도하고 있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바로 나중까지 우리와 함께 일하게 스티븐스였다.

     

     

     

    푸른 파도, 거친 파도

     

    우리는 버스로 대륙을 가로지르며 여러 곳에서 자원자를 태워 결국 146명의 젊은이들이 여름에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됐다. 우리가 , 섬을 방문할수록 우리의 기쁨은 풍선처럼 커져갔다. 어떤 부인은 난생처음 글을 읽을 있게 되었다. 어떤 팀은 돌풍이 부는데도 불구하고 어부를 고용해서 어떤 섬으로 가고 싶어했는데 청년들이 기도했을 그들 앞에서 요동하던 바다가 잔잔해졌다. 어부는 너무 놀라서 그들이 육지에 도착했을 그들보다 앞서 가서 마을 사람들을 부르며 “이 젊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소리질렀다.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사우 도시에서 대성회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8 22, 클레오 태풍 1호가 대서양을 건너 본격적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풍이 섬을 강타했던 , 나는 문득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중요한 면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는 “네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그것은 전도로 이어지며 다른 하나는 “네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우리 힘이 닿는 대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복음의 면이며 그것은 구분 지을 없는 것이다. 세차게 두드려대는 빗줄기처럼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나는 선교 사역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파악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전도와 구제사역이 조화를 이루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달린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섬의 원주민들과 판잣집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는 같았다. “기도합시다. 달린과 그리고 젊은 YWAM 청년(YWAMer)들은 고개를 숙이고 폭우로 그들이 가진 작은 것마저도 잃어버린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만일 먹을 것과 의복과 건축자재 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YWAMer들이 집을 다시 짓는 것을 도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많은 것을 옮기려면 배가 필요했다. 꿈같은 계획이 아닌가! 현재로서는 우리가 있는 것이란 없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무엇인가가 영혼에 심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같이 사람들이 아프다고 느끼는 부분에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 너무나 자주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보살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있어 실패한다. 나는 클레오 태풍으로 인해 영혼에 심겨진 씨가 파종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했다.

     

     

     

    본격적인 시작을 위한 열쇠

     

    스프링필드의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인 토머스 짐머만과 만나게 것은 한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그는 바하마 섬에서의 실험적인 전도에 대해 들은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초교파적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교파 안에서 내가 일할 있는 자리를 추천했다. 좋은 자리였고 봉급도 많은 간부급 자리였지만 제안을 들었을 가슴은 덜컹 내려앉는 같았다. ‘하나님, 정말 당신의 말씀입니까? 나는 재빨리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교파에서 모인 젊은이들을 파도처럼 선교를 위해 파송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것이었다. “총회장님,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것과는 아주 다른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말에 동의는 했지만 그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앞으로는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없게 것이고 나는 이상 하나님의 성회의 목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올바른 일을 했다는 확신이 있었다.

     

     

    YWAM으로 돌아와 다시 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얼마 유방암 말기 선고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산드라 고모에 대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 총회장을 방문한 이후로 약간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우리들뿐이었다. 그것은 달린과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결혼한지도 4 반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동안 매해 여름마다 수백 명의 단기 선교 자원자는 있었으나 전임 봉사자들은 달린과 외에 겨우 8명뿐이었다. 나는 사역이 완전히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할 있는 무엇인가를 보고 싶었다. 정말 꿈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라는 확실한 어떤 증거를 보기 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뉴질랜드가 꿈의 발사대가 줄은 알지 못했다.

     

     

    나와 스탭 사람을 실은 수상비행기는 수양회 장소인 뉴질랜드의 그레이트 베리어 섬에 착륙했다. 첫눈에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40 초반의 부부가 나를 맞아 주었다. 남편 도우슨은 사업가였다. 그의 아내 조이는 나를 방까지 안내하는 동안 명랑하게 재잘거렸다. 나는 강의하러 곳에 왔지만 외딴 섬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사람은 바로 나였다. 수양회 지도자들과 함께 기도하자는 초청을 받은 자리에서 나는 놀라운 일을 경험했다. 짐과 조이 도우슨을 포함한 강사 5명은 강의 순서를 정하기 위해 기도했는데,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같은 응답을 주실 것을 온전히 기대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주님께 여쭤보았다. 그때 마음 속에 친근한 음성이 주위에 있던 가운데 사람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자 모두 준비되셨어요? 인도자가 말했다. 사람 사람 돌아가며 머리 속에 떠오른 이름들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5명이 똑같은 응답을 받았다. 나는 속에서 흥분으로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날마다 우리는 이같은 특별한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았다. 외에 다른 4명은 이런 식으로 함께 수년을 기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세 명의 동방박사 이야기’ 같았다. 그들은 각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별을 따라갔지만 모두 함께 아기 예수께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그곳 일이 끝나고 우리가 조그만 여객선이 그레이트 베리어 섬을 떠나 오클랜드로 전도 여행을 시작할 나는 기도했다. “아버지, 나는 어떻게 당신의 음성을 들을 있는지 배우려고 하는 중입니다. 아버지께서 생각하시고 계신 다음 단계를 있도록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시간쯤 지났을까, 나는 내가 했던 번째 설교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서의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금식하고 기도하며 광야에 계셨다. 나는 문득 예수님의 생애로부터 가지 방식을 발견했다. “하나님, 제가 금식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순간 하나님의 응답이 떠올랐다. “네가 도착하는 날부터 7 동안 사람들을 피하여 기도하기를 원한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일이 너무 많았다! 사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수천 마일을 달려온 셈이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들은 것입니까? 나는 다시 여쭤보았다. 그러나 내가 받은 응답은 “도우슨 부부가 자기들과 함께 머물라고 요청해 테니 너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도우슨 부부는 내가 벌써 다른 곳에 머물 계획이 있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게 그런 요청을 만무했다. 조금 있으려니 사방이 어스름해지면서 저녁이 되었다. 도우슨이 갑판 난간으로 나와 옆에 섰다. 짐이 입을 뗐을 나는 숨을 죽였다. “저, 로렌, 다른 친구들과 함께 머물 계획이 있는 알지만 조이와 나는 주님께로부터 음성을 들었다고 믿어요. 우리와 함께 머물 있겠소?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나는 숨막힐 정도로 멋있는 항구 전경을 끼고 스칸디나비아식으로 지어진 도우슨 부부의 이층집 앞에 섰다. 짐은 아래층에 있는 손님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전화선을 끊은 침대 녹색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거룩함에 대해 많이 들어왔지만 거룩함이라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올바르게 우선권을 정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처음 이틀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한두 마디 말씀을 하셨다. 한동안은 주님과 함께 침묵을 즐기기도 했다.

     

     

    금식 3일째 되는 비로소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영혼 수술’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엎드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은 날카로운 메스를 대셨다. “스프링필드를 기억하는가? 나의 속마음이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곳의 교파 지도자들, 특히 짐머만 총회장에 대한 비판적인 감정들과 원망들이었다. 2 동안 나는 ‘거절감’으로 괴로워했고 마음속에 자신의 뿌리까지 부인하는 마음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동안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애쓰며 낭비한 모든 시간들이 인식되었다. 시간이 도적을 당한 것이다. 나는 울면서 하나님께 긍휼을 구했다. 과거에 나의 지도자들이었던 분들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고, 그분들로부터 받은 영적 유산에 대해서도 감사했다.

     

     

    칼날이 와서 가해지고 다시 가해졌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이 계속되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인정을 얻기 위해 행동했던 순간들을 생각했다. 옛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얘야,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사용하실 없단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의 죄인 성적인 공상들에 대해서도 지적하셨다. 나는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지었던 죄들을 하나하나 떠오르는 대로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고 그런 것들로부터 돌아설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영혼의 수술이 끝난 가지 해야 일이 남아 있었다. 나는 펜과 편지지를 찾아서 내가 써야할 편지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짐머만 총회장님...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완전히 새롭게 정결해진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이 되어 금식기도를 서서히 마무리 지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어떤 전환점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로 번째 생긴 일은 분명 좋은 일은 아니었다. 비바람이 몰아쳐 지하실로 물이 들어와 전도지 전부가 물에 잠겨버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 모두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도지를 빨랫줄에 널어 말리고 있었다. 폴리네시안 빈민촌으로의 전도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본격적인 사역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비행기는 구름 위로 올라가서 달린을 만나기로 하와이를 향해 30,000피트 상공을 날고 있었다. 지난 주간을 돌이켜보면 마치 하나님의 학교에서 교육 받고 나온 기분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을 중요시하는 사람들로부터 인도하심을 받는 새로운 원칙들을 배웠고, 원칙들을 적용해 보았다. 사실 그것은 우리 가족 안에서 배워온 것과 별로 다를 없었다. 달린과 나는 신앙적으로 대단히 풍요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가르침을 받기도 하고 우리의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본보기를 보아 왔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남다른 이점들을 가진 셈이었다. ‘그렇다면... 가족적인 분위기로 신중하게 고안된 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갖게 되는 그런 학교가 있다면 얼마나 멋질 것인가!’나는 생각이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생각을 주시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비행기는 달린의 비행기보다 먼저 도착했다. 나는 미국 본토로 돌아가 일에 빠져들기 전에 하와이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 무척 기뻤다. 하와이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동양과 폴로네시아인과 서양의 얼굴들이 어우러져 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와이는 정말 동양과 서양의 연결지점이었다. 달린을 만난 나는 뉴질랜드 도우슨 부부 집에서 일어났던 놀라웠던 ‘영혼의 수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기도했던 바로 기간에 달린도 금식하며 기도했고 그녀 역시 영혼의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 둘을 인도하셨는가를 보는 것은 너무도 굉장한 일이었다. 또한 달린의 뱃속에서 나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경이로웠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개월이 지난 후에 나는 심한 감기로 통증과 열을 달래면서 아파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떤 생각이 나를 스쳐갔다. “너는 학교를 시작하게 것이다. 그것은 전도 전략 학교라고 불리게 것이다. 생각은 없어지지 않고 점점 커져가다 다른 생각이 파고 들어왔다. “그 학교는 스위스에 세워질 것이다. ‘스위스라니! 하나님, 정말 당신의 음성입니까? 스위스가 있는 유럽은 우리 YWAM 활동이 전혀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나는 생각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것인지 확인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일을 밖에 내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충격적인 방법으로 확인을 해주셨다. 어느 아버지가 친구 윌라드 씨와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그가 전화로 내가 아버지와 함께 나와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나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나는 그와 악수를 끝내자마자 나를 만나자고 했는지 물었다. “로렌, 당신에게 전해줄 말이 있소. 주님께서 누군가가 스위스에서 학교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심어주셨소. 그런데 어젯밤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이오.”‘동방 박사의 원칙’이 놀랄 정도로 또다시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가 스위스에 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배가됨

     

    우리 아기가 태어나고 스위스에 다녀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낡은 호텔 하나를 임대했고 5개국에서 36명의 젊은이들을 맞을 계획을 추진시켰다. 학교는 1969 12 27일에 시작되었다. 스티븐스와 그의 아내도 우리와 합류했다. 나의 경우 자신이 정결케 되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하나님의 능력이 풀려 역사하시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회개와 고백을 중요시해왔지만 YWAMer들에게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고백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깨끗한 양심을 가진 후에 오는 능력’에 대한 강의가 끝난 다음 돈의 진실한 고백의 간증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렸다. 사람들 앞에서의 고백은 겸손과 일치를 가져오고 가족처럼 더욱 가깝게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1970 여름이 끝날 무렵, 우리는 알프스 산이 보이는 호텔 앞의 무화과나무 정자 아래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각국에서 36명의 젊은이들은 독일과 스페인, 프랑스, 영국,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이 겪었던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 사람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YWAM 함께 구체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야에서 독립적이면서도 선교사역과 연결되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고 믿었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꿈꿔오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지막 차례로 나는 스티븐스를 바라보았다. “돈은 어떤 계획이 있죠? 그들 부부는 동안 기도했는데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나는 거의 포기했었어요. 그러다가 점심시간에 침대 위에 놓여 있던 ‘타임’지를 집어 들어 2 독일 뮌헨에서 있을 ‘뮌헨 여름 올림픽’ 장소를 짓는 사진을 보고 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얼마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수천 명의 청년들이 동부 베를린에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던 모습이 떠올랐어요. 소름끼치는 일이었죠. 청년들 눈에는 빛이 없었어요. 마치 죽은 자들이 행진하는 같았지요. 그는 나를 건너다보았다. “로렌,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뮌헨에서 크리스천들의 행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철의 장막과 양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얘기할 너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말을 듣자 뭔가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치는 같았다.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흥분의 외침과 동의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학교에서 이처럼 중요한 아이디어를 주신 것이다.

     

     

    성공 후에 따르는 위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칙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그런 고통을 충분히 예방할 있었을 텐데. 원칙은 주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이든지 우리를 승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지만 성공 자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는 있어서 가장 위험한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난 2년간을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얼마나 쉽게 일들이 진행되어 왔는가를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원칙을 발견했고 원칙은 적용되었다. 나는 자신만만해 있었다. 뮌헨 외곽에 300명을 수용할 있는 화려한 6층짜리 성을 믿을 없이 값에 계약할 있었고 그곳에 전단지를 찍을 대형 인쇄기도 미리 설치해 놓았다.

     

     

    뮌헨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기 4개월 전인 1972 3, 나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바퀴 돌면서 젊은이들에게 뮌헨에서 있을 3주간의 전도 여행에 참석하도록 권유하고 다녔다. 그런데 웬일인지 하나님께서는 올림픽 전도 여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장래에 일어날 일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셨던 것이다. 서울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창문을 내다보는데 중국땅이 보였다. 그때 돌연 하나님의 음성이 생각을 가로질러 들려왔다. “배를 사도록 하라.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 당신이십니까, 하나님? 이것이 자동적인 질문이었다. 배라면 수년 바하마 선교여행 필요를 절감했던 적이 있었지만, 배를 사려면 숙련된 선원과 막대한 돈이 필요했다. “하나님, 만일 지금이 시작할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확신할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나는 뉴질랜드의 젊은이들에게 뮌헨 전도여행에 관한 설명을 끝내고 짐과 조이 도우슨, 칼라피 그리고 나와 가까운 지도자들을 만나 상해 상공을 날던 비행기에서의 경험을 얘기했다. 우리는 모여서 기도했다. “주님, 우리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배에 적합한 사람들을 모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당신이 아십니다. 그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남자가 이렇게 물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격이 없는 사람을 선교에 부르시는 걸까요?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바다에 관한 것뿐이에요. 나는 오랫동안 일등항해사와 선장으로 지냈지요. 그런데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에 부르신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응답하시는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항해사는 우리가 금방 일거리를 제공할 없는데도 당장 일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먼저 해야 사역은 뮌헨 전도 여행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위해 행진하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주고 계셨다.

     

     

     

    뮌헨: 세계의 축소판

     

    뮌헨 올림픽이 진행되는 3 동안 1,000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도착했다. 계획은 간단했다. 매일 스티븐스의 지도하에 500명의 젊은이들이 뮌헨의 거리에서 전도하고, 동안 나머지 500명은 나의 지도하에 성에 남아서 가르침과 중보기도와 성경읽기 등으로 새로운 충만함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첫날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재미나 보고 경쟁이나 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축제를 방해하는 같은 힘든 과제였다. 가장 문제는 사람들의 무관심이었다. 스포츠는 커다란 우상이었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 인류애’라는 우상이 깨어지고 무너졌을 때에야 뭔가가 가능했다.

     

     

    9 5 화요일 아침, 아랍 테러분자들이 선수촌을 부수고 들어가 2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죽이고 9명을 인질로 잡았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난폭한 폭발 사건이 있은 9명이나 되는 이스라엘인과 5명의 아랍인 그리고 명의 독일인이 살상되는 것으로 끝났다. 올림픽 축제는 하룻밤 사이에 장례식으로 변했다. 거리에서 떼지어 몰려다니던 사람들은 갑자기 갈길을 잃었다. 갑자기 우리 젊은이들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이 열렸다. 우리의 거리 행진을 막았던 당국자들도 행진을 허락해 주었고 어떤 사람은 정원에서 꺾은 수천 송이의 꽃을 갖다주면서 행진할 나눠주라고 말했다. 우리 인쇄기로 찍어낸 신문들은 우리 손으로 나눠줄 새도 없이 집어가고 없었다. 신문에는 아랍 YWAMer들과 이스라엘 YWAMer들이 같이 팔짱을 끼고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과 함께 세계 인류애를 유지하는 유일한 답은 예수 그리스도뿐이란 것을 전파하는 특종 기사가 실렸다. 뮌헨 올림픽은 이렇게 대단원을 내렸다.

     

     

    올림픽이 끝남으로 인해 나의 관심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배를 구입하도록 추구할 때라고 말씀하신지 13개월 만인 1973 4월에 나는 마오리 호를 조사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향했다. 우리는 벌써 선장과 다른 선원들을 확보했고 그들은 현재 로잔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배는 전해들은 그대로였다. 하얀 간판 위에 주황과 푸른색의 굴뚝 그리고 450피트 가량의 검은 배였다. 배는 웰링턴의 언덕 아래에 늠름히 있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운명과도 같은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는 여러 일을 추진하라는 신호와도 같은 것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범할 있는 가장 비참한 실수 가운데로 걸음 내딛고 있다는 것은 눈곱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당장은 모든 것이 정말 진행되는 같아 보이는 인도하심을 받고 있을 모험에 있어서 후반부에 저지르게 되는 실수였다.

     

     

     

    어두운 그늘에 묵묵히 계시던

     

    나는 하나님께서 마오리 호를 사도록 급작스럽게 인도하시는 같이 보였으므로 배를 4개월 후에 72,000달러의 계약금과 함께 잔액은 30 내에 주기로 예약했다. 그리고 얼마 있어 영국의 사업가로부터 전화가 하나님께서 YWAM 위해 무엇인가 자기에게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으며, 그가 보낸 돈의 액수는 우리의 계약금보다 많은 액수였다. 세간의 관심이 우리에게 집중되었고 우리는 확신이 있었다. 우리는 언론 기관과의 인터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실 아니라 또한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라는 발언을 했고, 신문에까지 YWAM 젊은이들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배를 주실 것이다’”라는 머리기사가 실렸다. 우리는 잔금만 치르면 배로 뉴질랜드에서부터 캘리포니아까지 항해할 것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공중을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날마다 새로 일어나는 일들을 단순히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나는 일의 진행을 늦추어야 필요를 느꼈다. 사실 나에게는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하나님과 홀로 지내는 일주일이 필요했다. 그런데 주간에 모든 것이 뒤바꿨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히브리서의 말씀을 펼쳐 놓은 채로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12 26, 27 말씀이 장에서 튀어나오듯이 눈에 들어왔다.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내가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마치 바위로 명치 끝을 치는 같았다. “오, ! 설마 말씀이 배에 관한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겠지? 다음날, 적지 않게 걱정을 하면서 나는 캘리포니아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오늘 매입 건으로 들어온 있습니까? 나는 물었다. “하나도 없어요, 로렌.”약속했던 마닐라 사업가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나는 당황했다. 히브리서의 말씀이 배에 관한 말씀이란 말인가! 주간의 나머지 동안 기도하면서 나는 분명한 경고의 말씀을 가지고 씨름했지만 아무 것도 분명해지지 않았다.

     

     

    3 후면 오사카로 날아가야 했고, 배의 잔금을 치를 날짜도 10일밖에 남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나는 기도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나는 성령님께서 마음에 말씀하시기 원하시는 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돌연 머릿속으로 그림이 보였다. 나는 YWAM 지도자들의 무리 앞에서 기쁨에 넘쳐 환호하고 있었다. “우리는 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오리호를 사기 위한 돈을 주셨습니다! 군중들은 크게 환호하며 팔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 갑자기 나는 왼편 그늘에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 아무도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가까이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가 애통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분은 예수님이셨다! 우리는 그분을 무시해오고 있었다! 배에는 환호를 보내고 박수를 치면서 예수님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소름끼치는 장면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아니 우리는 배를 소유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울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용서해 주셨다고 느꼈다. 그러나 나는 마음가짐이 바뀌어야 사람이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월요일 오사카에서 지도자들에게 침울한 메시지를 전했다. 모든 사람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일치된 것이었다. 우리는 Youth With A Mission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시는 도구’이며 우리는 ‘가장 영적인 선교 단체’이며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믿음에 관해 많이 배워 왔고,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특별한 방법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았고, 그것은 메스꺼울 정도로 더러운 것이었다. 나는 어쩔 바를 몰랐다. 오직 우리가 때를 맞추어 회개한 것이기를 바랬고, 이제는 우선권을 올바로 정하여 도구로부터 우리의 눈을 돌려 하나님을 향하여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상황을 고치시고 여전히 우리에게 배를 주시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조이 도우슨은 내게 전화로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예수님께서는 기다리셨다”고 말했다. 먼저 마오리에 대한 우리의 계획이 완전히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획과 함께 우리도 죽어져야만 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가지 단계

     

    배에 대한 우리의 꿈은 죽었다. 우리 단체에 대한 평판도 무참히 손상되었다. 미리 모집했던 60명의 선원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흔들릴 있는 모든 것을 흔드시겠다고 히브리서 말씀을 읽은 바로 그날 이래로 헌금은 1달러도 들어오지 않았다. 달린과 나를 가장 불안정하게 만든 것은 분명한 방향제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돌파구를 찾는 시간이 하와이에서의 어느 놀라운 밤에 시작되었다. 배에서 열기로 했던 학교는 취소되었지만 그곳에 참석할 예정이었던 90명의 젊은이들은 고맙게도 대신 하와이 YWAM학교로 주었다. 나는 철야기도를 하기로 결정하고 3명의 스텝인 지미, 제니, 그리고 레오나 피터슨에게 나와 함께 기도하기를 요청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조이 도우슨에게 배웠던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는 가지 단계를 따랐다. 번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세로 사탄의 소리를 잠잠케 하도록 명령하고, 번째는 어떤 상상이나 미리 갖고 있던 생각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깨끗케 해주시라고 주님께 구했다. 번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때와 방법으로 말씀하실 것을 믿으며 조용히 기다렸다.

     

     

    새벽 3 30분을 지나고 있을 우리는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는 ‘코나’라는 단어였다. 나는 곳에 한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곳이 아일랜드에 있는 장소라는 것은 알았다. 번째는 아일랜드에 있는 등대의 그림 같은 것이 마음 속에 보였는데 등대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까지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음 속에 있는 관심사는 오로지 배에 대한 꿈이 부활하는 것에 대해서였던 것이다. 이제 시계는 아침 5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생각은 모든 새로운 정보들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 공부 시간이 되어 그곳에 참석한 90명의 젊은이들에게 동일한 기도를 부탁했을 거기에서 나온 응답도 등대, 학교, 아일랜드 - 코나, 만에 있는 하얀 배였다.

     

     

    배를 잃어버린 달이 지나고 있었다. 교육을 마치고 스위스로 돌아왔으나 나는 마음을 곳에 모을 수가 없었다. 내가 없는 동안 돈은 그곳 일을 해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들을 배가시키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돈이 지부의 지도자였다. 나는 자신의 새로운 모험을 찾아 옮겨가야 때가 되었던 것이다.

     

     

    달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창문 밖으로 1월의 안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흔들릴 있는 것은 그가 흔드시겠다고 하신 이래로 4개월 동안 겪은 아픔을 생각했다. “여보, 나는 한번도 이렇게 방향도 없이…. “알아요, 여보. 우리는 우리 도끼머리를 잃어버린 거예요. 나는 달린이 어떤 인도하심을 받는 원칙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즉각 알아차렸다. 엘리사의 생도 하나가 그의 도끼의 머리 부분을 잃어버렸다. 엘리사는 젊은이에게 가르쳐 주기를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던 마지막 장소로 돌아가라고 했다. 마지막 장소에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필요로 했던 연장을 다시 주셨다. 때때로 우리는 순간적으로 우리 도끼의 머리 부분을 잃어버린다. 가장 날카롭게 자르는 도구인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놓치는 것이다 이럴 때는 우리가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돌아가면 도움이 것이다. 어떤 곳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마지막 장소일까? 나는 분명히 보았다. “달린,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가 우리 도끼의 머리 부분을 가졌던 마지막 장소는 하와이 철야기도했던 곳이오.

     

     

     

    배를 포기하지 말라

     

    달린과 내가 아일랜드 코나에 있는 호텔로 이사해 2개월이 지난 어느 나는 스티븐스를 방문했다. 돈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배에 대한 비전을 다시 일으키고 계신 아닌가 생각돼요. 돈은 이탈리아의 베니스에 위치해 있는 빅토리아 호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크고 오래된 배로 발전기도 돌아가지 않는 11,000톤짜리 여객선인데 배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가격으로 구입할 있을 거예요. 손봐야 부분은 많겠지만 우리가 해낼 있을 같지 않으세요?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있었다.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돈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배에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요. 나는 물었다. “돈, 배가 무슨 색깔이죠? “하얀 색이었어요. 돈이 말했다.

     

     

    그리고 2 아인스워트라는 남자가 아일랜드에 와서 우리가 어디에 사는지 물어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경험한 이상한 일과 환상이 나와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토론토의 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의 눈앞에 남태평양 지도가 나타났다. 그가 보는 환상 가운데 하얗고 커다란 배가 있었다. 배는 하와이 섬들로부터 출발해 남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배가 태평양을 통과할 때마다 부흥이 일어났어요. 수천 명의 남태평양 연안 주민들이 복음을 듣고 자신들이 전도자가 되어 동남아시아와 인디아, 그리고 중국까지 갔습니다. 수백만이 주님을 알게 되었지요. 그의 말을 듣자 나의 몸에 전율이 왔다. 내가 듣고 있는 사실을 거의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이 너무 빨리 그리고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돈이 처음으로 빅토리아 호에 관해 이야기한 3개월 후에 우리는 소유주들과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님께서 돈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도록 완전히 맡겨놓았다. 그것이 개인적으로는 마오리를 통해 배운 영적인 신중함과 아인스워트 씨의 비전을 듣고 가진 담대함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돈이 베니스로부터 전화를 했다. 그는 아주 흥분하고 있었다. 소유주들이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정부 당국자도 동의했다.

     

     

    한편 그러는 동안 마치 현미경에 초점이 맞춰지듯 우리 대학교에 대한 개념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가지 일에 대해 염려가 됐다. 물론, 돈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러나 사실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인도는 너무 극적인 것이어서 주님에게보다 자체에 영광을 돌리게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하심을 받는 번째 목표는 우리를 예수님과 더욱 가까운 관계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모든 다른 목표는 그것에 보조적인 것이어야 한다.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가?

     

    우리는 이름을 아나타시스(ANATASIS)라고 정했다. 아나타시스는 희랍어로 ‘부활’이라는 뜻이다. 배에 모인 우리 YWAMer 60명은 미래 선교와 구제 사역의 도구가 배에 대한 문제들을 놓고 기도했다. 아나타시스 호의 방문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왔을 짐과 조이 도우슨 부부의 27살난 아들인 존이 내게 말했다. “타임지에서 베트남을 빠져나온 피난민에 관한 기사를 최근에 읽었는데, 보트 피플은 물이 새는 보트를 타고 베트남을 빠져 나오다가 중간에 해적을 만나거나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아니면 뗏목을 타고 표류하게 된대요. 이웃 나라에 있는 난민 수용소는 열악하기가 이루 말할 없죠. 로렌, 나는 기사의 제목을 머리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어요. 그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의 몸에게 던지는 질문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느끼시는 마음일 거예요. 그분은 울고 계세요.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가’라고 하시면서. 존의 도전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이것이 15 클레오 태풍 이후로 내가 꿈꾸어왔던 구제 선교 사역의 시작이 아닐까?

     

     

    드디어 우리는 YWAM 젊은이들을 난민 수용소에 보내게 되었다. 돈의 남동생인 게리 스티븐스는 30명이나 되는 그룹을 이끌고 주빌리 수용소로 난민들도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오물을 삽으로 퍼내고, 부서진 하수관을 고치거나 화장실을 고쳤다. 자비(自費) 수용소까지 와서 아무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들을 하는 것이었다. YWAMer들은 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이 바라던 그런 기회들이 주어지고 있었다. 곧이어 YWAM팀은 수용소 담당자들로부터 학교를 열고, 성경공부 시간을 갖고, 상담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의 창고를 열기 위해서 특별한 순종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처럼 보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봉사자들이 떼지어 몰려들었다. 수백 명의 젊은 YWAMer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열망하던 문이 열린 것이다. 경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왔다. 의사들, 간호원들 그리고 숙련된 기술자들뿐 아니라 붕대를 감는 작은 일도 기쁘게 사람들과 난민 청소년들을 가르칠 사람들도 오게 되었다. 모든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행동과 말을 통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YWAM 역시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세계에 걸쳐 하나님께서 점점 많이 재능 있는 사람들을 더하시고, 사역의 문도 열어주셨다. 지도자 중의 사람인 아키모프를 1980년에 복음 전파를 위해 소비에트 연방에 보냈다. 플로이드 맥클랑과 그의 가족은 창녀와 남창들이 있는 암스텔담의 홍등가로 가족이 옮겨갔다. 다른 사람들은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와 같은 지역을 책임지게 되었다. 영적 배가의 법칙이 효력을 발생하고 있었다. 브라질에 있는 YWAMer들은 보고하기를 전도 학교(SOE)에서 훈련 받은 젊은이들이 각자 자신의 개척지로 나아가려고 자신들을 헌신하고 있고, 소외된 인디언 부족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 아마존으로 올라가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달린과 내가 하와이에서 환상을 통해 미리 알았던 것처럼 우리의 관심은 아시아로 향했다. 우리는 팀을 방문하기도 하고, 전도하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며, 전임 사역자로 자라는 1,800명의 우리 가족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했다. 나는 대학교 비전이 아직도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확고히 믿으면서 여전히 나의 원래 중심지인 코나 베이스를 책임 맡고 있었다. 우리는 캠퍼스나 건물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그곳’에서부터 시작했다. 태평양 아시아 기독교 대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방을 빌리고, 저곳에서 모임 장소를 빌리고, 다른 곳에서 아파트를 빌려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상담, 성서에 바탕을 심리학적인 훈련, 준의료 활동 훈련, 학령전 아동을 위한 교사 훈련, 과학, 3세계로 가기 위해 발판이 기술학, 그뿐만 아니라 성경 연구학교, 선교학과 교회 사역 등의 과정을 시작했다. 태아와 같은 단계에 있는 학교들은 코나 해변가를 따라, 우리의 장소로 발전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진행돼 가고 있었다.

     

     

     

    물고기 이야기

     

    배와 대학교 가지 사역은 서로 밀접하게 뒤따르면서 진행되었다. 모든 YWAM 사람들이 배를 위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치르는 동참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데서 헌금이 들어오기도 했고 세계 각국의 여러 단체에서도 기금이 들어왔다. 아테네의 선상에서 돈과 디욘 그리고 175명의 단원들은 돌아가면서 40 금식을 시작했다. 40일간의 영적 훈련이 끝나가던 물고기들이 45 동안 아나스타시스가 정박해 있는 육지로 튀어오르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그들은 그것이 아나스타시스의 구제 사역이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라는 신호로 받았다. 그리스 사람들조차 말하기를 그와 같은 일은 한번도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들은 경탄하며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

     

     

    아테네에서의 바다 항해 시험은 걸리는 없이 순항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나스타시스 호는 닻을 끌어올리고 1982 7 7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캘리포니아로 오고 있었다. 나는 2000명이 넘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여러 교파와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배가 도착하는 것을 보기 위해 정박구에 모였다. “거룩, 거룩, 거룩! 대형 스피커를 통해 찬양이 울려퍼지자 그들은 모두 울면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돈은 내가 18 전에 받은 비전을 실현시키는 아주 효과적으로 일을 해냈다.

     

     

     

    하나님을 알아 간다는

     

    말로 표현할 없는 기쁨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있을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더불어 일하시면서 이처럼 귀한 것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지켜보는 말할 없는 기쁨!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 뒤에 있는 대학교와 우리 앞에 있는 , 이것은 예수님 자신의 기쁨과 승리의 함성이라는 것이 마음에는 너무나 확실했다. 우리는 마침내 인도하심을 받는 모든 가르침 중의 가장 것을 배웠다. 그것은 바로 그분을 좀더 깊이 알아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신의 모험에서부터 나온 것이었다.

     

엮인글 0 http://www.shalom-church.com/989/429/trackback

댓글 0 ...

http://www.shalom-church.com/989
번호
분류
제목
닉네임
50 기타 shalom 9988 2012.08.16
49 신앙 샬롬 20267 2012.09.12
48 신앙 shalom 26968 2012.10.08
47 신앙 shalom 27080 2012.10.19
46 신앙 shalom 29400 2012.10.24
45 신앙 shalom 28191 2012.10.24
44 신앙 shalom 25282 2012.11.02
43 신앙 shalom 29314 2012.11.05
42 신앙 shalom 27887 2012.11.06
41 신앙 shalom 27797 2012.11.09
40 신앙 shalom 28235 2012.11.21
책소개 샬롬 6089 2012.12.06
38 책소개 샬롬 14723 2012.12.06
37 책소개 샬롬 45460 2012.12.06
36 신앙 샬롬 21948 2012.12.06
35 책소개 샬롬 11678 2012.12.06
34 책소개 샬롬 9786 2012.12.08
33 신앙 shalom 20271 2012.12.16
32 신앙 shalom 19685 2012.12.27
31 신앙 shalom 20112 2013.01.1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