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5 12:44
(행
18: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7절을
보면 아볼로가 아가야에 가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볼로가 아가야 지역의 교회에 많은 유익을 주었던 것은 브리스길라 부부를 통해
온전한 복음을 들었기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에서 아볼로를 보낼 때 아가야에 있는 교회에게 아볼로를 영접하라는 편지를 함께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분명히 이 편지를 받은 교회는 편지 내용대로 아볼로를 따뜻하게 영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중요 합니다. 이는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 많은 유익을 끼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근거입니다.
교회의
초청을 받아 설교해 본 경험이 있는 많은 설교자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따뜻하게 영접해 준 교회에서는 더 힘이 나고 은혜롭게 설교가 되지만,
냉랭하게
맞는 교회에서는 왠지 열정과 은혜가 떨어지더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설교자들의 태도를 그 설교자 개인의 인격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주님도
당신을 배척했던 나사렛과 같은 동네에서는 거의 이적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마 13:53-58).
이것은
목회자를 대하는 성도들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부흥의 원리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목회자를
잘 대접하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여러분,목회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양 무리인 성도들을 인도하고 보살피도록 하기 위해 세우신 목자들입니다.
말하자면
목회자는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를 존중하고 잘 따르며 잘 대접하는 것은 목회 자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로
성도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라도 목회자를 잘 대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를 보면 성도들이 목회자를 도무지 존중하고 대접할 줄을 모릅니다.
그들은
자기 자녀를 위해서는 수백만 원의 과외비도 아까운 줄 모르고 평평 쓰면서 목회자의 사례비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심지어
사례비를 인건비라고 부르며 마치 목회자를 인부 대하듯 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도들은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볼 때 그런 교회는 부홍이 될 리가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에 유익이 있을 리 없습니다.
여러분,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이 성장하며 유익을 얻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목회자를 존경하고 잘 대접하십시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자기를 영접할 때 천사를 영접하듯,그리스도를 영접하듯 하였다고 하였습니다(갈 4:14).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도 목회자를 대할 때 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부흥하고,그런 성도들이 유익을 얻게 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갈 6:6)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 며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 끼리 화목하라”(살전 5:12,13)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약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