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로렌 커닝햄 [책소개]
  • 조회 수: 2881, 2012-12-07 00:25:50(2012-12-07)
  •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로렌 커닝햄제니스 로저스 지음/예수전도단 옮김

     

     

     

    번쩍이는 것이 금은 아니다

     

    나는 팜비치에 있는 산드라 고모 집의 넓은 대리석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호킨스 아저씨가 나를 안내했다. 눈길은 가죽 의자 옆에 세워 놓은 지구본에 멈췄다. 짧은 순간, 스무 이후로 지금까지 동안 마음 속에 살아 있는 특이했던 환상이 머리를 스쳤다. 선교 사역을 하는 주의 청년들이 세계 모든 대륙의 해안을 행진하면서 물결처럼 대륙들에 상륙하는 광경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주님께로부터 명령이라고 생각할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전’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혹시 내가 가진 비전도 하나님을 위해 크게 역사를 일으킬 있는 특별한 인도하심들 중의 하나가 있을까?

     

     

    나는 산드라 고모에게 세계여행을 통해 내가 젊은 선교사들에 대해 말씀드렸다. 산드라 고모는 일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다. 산드라 고모는 어렸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뒤로 제쳐놓고 싫어하셨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으로 인해 상처 입은 사람에게 나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있을까? 고모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이전에 산드라 고모를 실망시켰던 부분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에 대해 정말 정직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텍사스 우발드라는 작은 도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매우 안락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즉시 세탁소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직업을 가진 텍사스의 여러 도시를 옮겨다니며 주말에만 시간제로 복음을 전했다. 그러던 위기에 부딪히게 되었다. 1916 무렵 무서운 천연두가 나돌고 있었는데 부인과 아들이 ( 남자아이와 명의 누나들이 있었다) 병에 걸렸다. 2 동안 커닝햄 할아버지는 부인과 아이들 침대 옆에서 밤을 지샜으나 할머니는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놀랍게도 슬픔을 당한 얼마 되지 않아서 커닝햄 할아버지는 전적으로 복음을 전할 것을 선포하셨다.

     

     

    그러나 딸인 산드라 고모를 크게 실망시킨 것은 할아버지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벌써 그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적인 인도하심이 있다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서 계속해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최선을 놓칠 수도 있다. “무엇을 하라.”는 인도하심을 후에는 “언제 그리고 어떻게”를 알아야 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에는 순종했지만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았다. 만약에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인도를 계속적으로 구했다면 아마도 잇따라 일어났던 고통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순회 성경 교사로서 일하기 원하셨다. 그는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할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각각 다른 집에 맡겼다.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결정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산드라 고모와 아르네트 고모는 그들이 어렸을 겪었던 어려움과 슬픔을 할아버지의 “어리석은 부르심” 탓으로 여겼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로 결심했고, 성장한 뒤에는 각자 원하는 길을 갔으며 사업에 몰두하면서 최선을 다해 돈을 벌었다. 그것이 어머니와 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들의 보상책이었다. 그들은 성공했다. 산드라 고모는 3개의 저택을 소유하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 톰은 아들 맏이였는데, 어린 시절 집을 아홉 군데나 옮겨 다니면서 어렵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할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것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도 열일곱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남서부를 두루 다니며 부흥집회를 열었다.

     

     

     

    가족으로부터 이어받은 유산

     

    나의 아버지 커닝햄은 다른 순회 전도자 가족의 셋째 주웰에게 매혹되었다. 그녀는 12살이던 어느 늦은 여름날 오후 시냇가 위에서 기도하던 하나님께서 아주 분명한 음성으로 “나는 네가 복음을 전파하기 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17세가 되었을 설교자가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달을 노력한 후에야 조촐한 결혼식을 올릴 있었다. 신혼부부인 부모님은 도시, 도시를 여행하면서 거리에서나 간이 정자 밑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때로는 분명한 소리로, 때로는 마음에 확실하게 다가오는 인상으로 들을 있는 내적인 음성에 친숙했다. 또한 그들은 말씀을 통해서나 꿈과 환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도 익숙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실 때면 아버지는 “우리는 예수님의 긴급 명령을 이루는 종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예수님의 지상 명령, 그것이 열쇠이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모든 곳에 가서 복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하셨다면 그분은 분명히 우리가 가야 곳도 친히 인도하실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어디든지 갔다.

     

     

    1933년에 나의 누이 필리스가 태어났고, 2 후에 내가 태어났다.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먼지 많고 사막 같은 아리조나의 시골, 사방 10피트의 텐트 속에서 상자들을 가구로 삼고 살던 일들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불우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자랐다. 부모님은 하고 계신 사역과 하나님의 음성에 기울이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 우리도 동참시키셨다. 6 어느 저녁 집회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는 확신을 가졌고, 처음으로 내가 그분께 속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10살이 이후로 아버지는 나에게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에는 내가 집을 돌봐야 한다고 말씀해 오셨다. 즈음 슬픈 소식을 듣게 것은 전화를 통해서였다. 집을 떠나 있던 아버지가 맹장염에 걸리셨는데 수술을 하지 못해 복막염으로 이미 번졌을 가능성이 있고 전쟁 기간이라 페니실린도 없는 상황이므로 돌아가시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전화기를 내려놓으시고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다. 간절히! 나는 소파 뒤로 기어가서 시간 동안 거기서 기도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 후에도 아버지의 상태는 여전했다. 우리가 계속해서 붙잡을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떤 말씀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결코 잊을 없는 사건이 생겼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은 3 후에 누군가 우리 문을 두드렸다. “커닝햄 자매님, 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남편이 관에 실려 집에 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기분 나쁜 남자가 말했다. “여기까지 오셔서 이렇게 일러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얼마나 어려운 걸음이었는지도 이해하구요.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께 여쭤보고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것인지 알아보겠어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하시지 않겠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아주 단호했다. 그리고는 신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한 후에 현관문을 닫으셨다. 그리고는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만약 꿈이 당신께로부터 것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단지 그것만 알려주세요. 그게 제가 알고 싶은 전부입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깊은 신뢰감을 가지고 계셨다. 그렇게 중요한 문제에 아버지다운 방법으로 대답해 주실 것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기대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어제 꿈속에서 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잠옷차림으로 집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확하게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회복되어 어머니의 꿈대로 침대차를 타고 잠옷 차림으로 도착한 것이다. 전쟁 중이라 좌석을 예약하기가 불가능했지만 친구 덕분으로 침대차를 얻어 있었다.

     

     

    후에 어머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있어서 중요한 면을 지적하셨다.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야.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만약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말씀하신다면 우리에게 직접 하실 거야. 가족으로부터 이러한 유산을 이어받은 역시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부르심에 따라 일하는 동안,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알고 있었던 지극히 작은 지식까지도 모두 활용되었다.

     

    우리의 인생을 바꿔 놓은 어린 소녀

     

    어느 저녁 어머니의 설교가 끝난 후에 나는 삼촌 교회의 강대상이 있는 난간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돌연 몸이 하늘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 들었고 눈앞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있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마가복음 16 15절의 지상 명령이었다!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말씀이 앞에 있었다.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그런데도 불타오르는 같은 말씀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내가 복음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아마도 해외 선교사로 부르셨던 같다. 왜냐하면 앞에 있던 말씀은 “온 천하에 다니며”였던 것이다.

     

     

    나는 일어나 어머니를 찾았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내게 일어났던 일을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싱긋이 웃고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날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시내로 나가 신발 가게로 들어갔다. “이 가게에서 제일 좋은 구두를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에게 말했을 나는 놀라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신은 아직 신을 만했다. 어머니는 눈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우리가 축하하는 거야, 로렌! ‘좋은 소식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성경 말씀에 아빠와 내가 얼마나 동감하는지 네게 보여주려는 조그만 표시란다.

     

     

    15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아침, 나는 교회의 나무 의자에 앉아 아버지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 속은 여러 동안 신문배달을 해서 돈으로 나중에 차를 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설교의 어떤 부분에 정신을 집중했을 , 며칠 번째 해외여행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아랍 소녀에 관해 말씀하고 계셨다. “아랍 소녀는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거지에 불과했지만, 나는 평생 아이의 얼굴을 잊을 없을 같습니다. 구걸하는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아이는 동전 이상의 깊은 것을 요구하는 듯했다. 위로, 격려, 사랑, 미래에 대한 희망 같은 것… 그것은 바로 복음이었다. 잠시 말씀을 멈췄을 나는 아버지가 울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 세계 선교는 단순히 말에 그쳤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이제부터 선교는 아랍 아이의 얼굴 같이 구체적인 것입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마쳤다. 나는 새로운 흥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변화된 사람은 아버지 혼자가 아니었다. 1 알칸사스 삼촌의 교회에서 앞에 씌어 있던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온 천하에 다니며…. ! 지금 당장 내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모아 40달러를 선교를 위해 헌금하기로 마음먹었다. 세미한 무엇인가가 마음을 요동시키고 있었다. 조용하면서도 계속되는 내적인 음성은 인생이 자동차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19살이 되던 1954 가을 누나 필리스와 나는 닷지 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나는 미주리의 스프링필드에 있는 ‘하나님의 성회’ 신학대학에 가기로 결정했고, 누나는 센트럴 성경학교에 가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10살난 제니스는 집앞 보도에서 우리가 짐을 싣기를 기다리며 있었다. 아버지께서 우리가 영육간에 안전하도록 기도해 주시는 동안 우리 다섯 식구는 동그랗게 모여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차를 몰고 모퉁이를 때는 입술을 깨물어야 만큼 가슴이 뭉클했다. 일생을 두고 하게 어떤 모험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물결치는 파도

     

    바하마 여행은 단순한 것이었지만 그곳에서의 특별한 체험은 인생을 결정하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주리 주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와 명의 친구들은 복음송을 부르는 4중창단을 만들었다. 우리는 방학을 이용해서 가까운 스프링필드 지역을 벗어나 좀더 곳으로 여행하곤 했는데, 한번은 바하마 섬의 수도인 나사우(Naasau) 택했다. 찬양 공연 중간 중간에 우리는 그곳의 선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는데, 십대 청소년 명이 선교 사역을 위해 와서는 소녀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시간을 보냈고, 일로 이제 섬에는 온갖 좋지 못한 소문이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착잡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날 나는 선교사 사택에 누워 성경을 펼쳤다. 그리고 하던 대로 하나님께서 마음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이어 일어난 일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내가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도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다. 그것은 마음으로 보는 영화 같은 것이었다. 모든 대륙을 한눈에 있었다. 파도가 해변에서 대륙으로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고 그리고 깊이 밀려 들어와서 대륙을 완전히 덮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내가 장면을 지켜보는 동안 그것은 다른 장면으로 바뀌었다. 파도들은 나이 정도의 젊은 사람들이나 혹은 나보다 어린 청소년들로 변하여 대륙들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에서나 음식점, 혹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한푼을 구걸하는 어린 아랍 소녀를 돌보는 같이 곳곳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면은 사라졌다.

     

     

    !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주님! 환상이 정말 당신께로부터 것입니까? 놀라운 일이었다. 청소년들이 선교사로 나간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환상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것이라면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던 미국 청년들 문제 같은 것은 피할 길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젊은이들의 힘을 사용할 어떤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왜 하나님께서 내게 환상을 보여주었을까?’‘나의 미래는 젊은이들로 파도와 무슨 연관이 있게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에게도 환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먼저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확실한 부르심을 주시면 그것에 대한 시험이 기간이 뒤따르게 하시기 때문이었다.

     

     

    주일 오정쯤 우리는 떠날 준비가 끝났다. 나는 공중전화로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떠나기 동안이라도 고모를 만나뵐 있는지 물어보았다. 고모는 아주 친절했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해에 아버지와 아르네트 고모, 산드라 고모는 다시 만나서 화해하셨다. 정말 행복한 재회였다.

     

     

     

    조촐한 시작

     

    24살이 되던 , 나는 대학을 마치고 가족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3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어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얘야, 모든 것을 주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네가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너를 쓰실 없단다.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학교 졸업반이었을 학생회 회장이었고 하나님의 성회 목사로서 안수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청년부 지도자라는 좋은 직책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교만이라니…. 어머니는 정곡을 찌르시는 분이긴 하지만 이번만은 잘못 보신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당시 나는 나의 일을 즐거워하고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편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지도하는 청년들은 모두 똑똑하고 열심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젊은이들을 위해 세운 활동 계획들의 대부분이 껍데기뿐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엔 도전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특히 10대와 20 초반의 젊은이들이 갈망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도전이었다. 나는 바하마 섬에서 보았던 신기한 환상을 다시 기억했다. 후로 벌써 4년이 지났다. 비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착잡했다. 무엇인가 해야 때다. 바하마 섬에서 보았던 파도가 밀려오는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 알아보아야만 했다. 아마도 가장 좋은 방법은 혼자 얼마 동안 여행하면서 해외에 어떠한 가능성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일 것이다.

     

     

    그러고 떠난 여행 중에, 인도의 어느 외딴 섬에서 나는 수백만이 나와는 전혀 다른 신앙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있었다. 어둡고 무척 더운 , 16살짜리 소년이 칼싸움 하다 죽임을 당해서 장례를 치르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장작더미 주위에 있던 사람들 속을 채우던 무기력함과 절망감을 결코 잊을 없었다. 나는 가슴을 휘젓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그곳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곳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교회 청년인 달라스와 래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의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거지들, 화장(火葬) 장작더미 위에서 타고 있던 16살짜리 소년, 절망감과 통곡을…. 그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나를 통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가슴 벅찬 일은 그런 상황을 너희들이 변화시킬 있다는 거야. 그들은 말에 동의했으나 예의 피할 없는 질문이 나왔다. “로렌, 우리는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리는 선교사가 아니에요. 우리는 불도저를 미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랬다. “어떻게” 도와주는가가 문제였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치라고 권유해 왔지만 현실적으로 우선 수년 동안의 학교과정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마칠 때쯤이면 그들의 불타는 열의는 식어버렸다. 젊은이들을 위해 어떠한 실제적인 길을 마련해 놓지 않고는 이상 그들에게 도전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인가 해야 때인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젊은이들을 모집해서 즉시 사역지로 보내야 한다. 개월 혹은 1 단기 선교를 위해 그들을 보내고 각자는 필요한 경비를 부담한다. 그리고 마음에 떠오르는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어떠한 사역을 하든지 교파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교회에서 자원 봉사자들이 모여 일할 있도록 개방해 놓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고가 구체적이고 분명해진 것에 대해 놀랐다.

     

     

    마침내 우리는 선교단체의 이름을 Youth With A Mission(청년선교단)으로 정하고 1960 12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나는 스프링필드에 가서 선교 담당자로부터 전문직 지원자들을 보내기만 한다면 그들을 관리해줄 좋은 해외 선교 지부를 연결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리베리아로부터 소식이 왔다. 나환자들이 사는 마을까지 정글을 가로질러 길을 닦는 일을 중장비 운전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로 달라스와 래리를 생각했고 그들은 그해 1 리베리아로 떠났다. 처음으로 명의 YWAMer(YWAM 지원하여 일하는 사람들) 사역에 들어섰다. 아직은 파도를 이루지 못했지만 시작은 것이다. 나는 수천 명도 되는 사람들이 달라스와 래리 같이 해외로 나가게 것을 확신했다.

     

    아내이자 친구인 동역자

     

    우리가 YWAM 시작한 지도 2년이 되었다. 어느 나는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YWAM이란 단체가 뭐하는 데예요? 딸인 달린이 갑자기 푸른 눈으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저,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파도처럼 해외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해요. 나는 사실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자원자를 보냈나요? 10명이오.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듯했다. “참 훌륭한 착상인 같아요. 안그래요 여보? 달린의 어머니가 나를 구제해 주었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의 처녀가 내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줄은 그땐 몰랐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줍어하지도 않고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게임을 벌이지도 않았다. 달린은 하나님의 성회 교회의 설교자와 선교사가 배출된 가정에서 자라온 사람이었다. 그녀를 순간 나는 갑자기 타지마할을 기억했을까? 나는 그녀의 생일날 그녀에게 반지를 주고 6개월 후로 결혼 날짜를 잡았다. 우리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유일한 사역에 관해 분명한 인도하심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우리는 달린 부모님의 교회에서 전형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타지마할 앞에서 나는 하나님께 동반자를 구했었다. 밖으로 내지 않고 마음 속에서만 간절했던 소원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기도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름대로 선교에 부르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의 독특한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고 나의 가족과도 어울릴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달린은 모든 면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것은, 그녀 자신이 부르심 가운데서 자기의 역할을 찾아낼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음 해에 하기로 바하마 섬의 ‘하기 봉사’는 겨우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지금 사역에서 3년째 일하고 있지만 달린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그냥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길 원했다. 그러던 어느 달린은 자신이 해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응답을 받았다. “로렌, 주님께서 다윗과 아비가일의 얘기를 통해 제게 응답해 주셨어요. 아비가일은 말하기를 ‘나는 남편의 시종의 발을 씻기겠다’고 했어요. 그게 저의 사역이에요. 종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의 발을 씻기는! 나는 달린을 안아주었다. 달린은 YWAM에서 전임 사역자로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번째 사람이었다. 사역이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각자를 위해 독특한 사역을 준비하고 계신다. 각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그것을 들어야만 한다.

     

     

    하기 봉사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사람을 선택해야 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되었다. 어느 나는 콜로라도 주에서 우리의 선교여행에 대해 수백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소년을 특별히 주목하게 되었다. 나중에 일이지만 달린은 그때 청중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소년’에게 가서 하기 봉사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말하라고 하셨다. 바로 소년이었다. 그녀가 소년에게 이야기를 전하자 소년은 놀라며 “나도 지금 하나님께 제가 만약 가기를 원하신다면 누군가가 내게 개인적으로 찾아와 말해줄 것을 기도하고 있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바로 나중까지 우리와 함께 일하게 스티븐스였다.

     

     

     

    푸른 파도, 거친 파도

     

    우리는 버스로 대륙을 가로지르며 여러 곳에서 자원자를 태워 결국 146명의 젊은이들이 여름에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됐다. 우리가 , 섬을 방문할수록 우리의 기쁨은 풍선처럼 커져갔다. 어떤 부인은 난생처음 글을 읽을 있게 되었다. 어떤 팀은 돌풍이 부는데도 불구하고 어부를 고용해서 어떤 섬으로 가고 싶어했는데 청년들이 기도했을 그들 앞에서 요동하던 바다가 잔잔해졌다. 어부는 너무 놀라서 그들이 육지에 도착했을 그들보다 앞서 가서 마을 사람들을 부르며 “이 젊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소리질렀다.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사우 도시에서 대성회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8 22, 클레오 태풍 1호가 대서양을 건너 본격적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태풍이 섬을 강타했던 , 나는 문득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중요한 면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해야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는 “네 마음과 정성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그것은 전도로 이어지며 다른 하나는 “네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우리 힘이 닿는 대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복음의 면이며 그것은 구분 지을 없는 것이다. 세차게 두드려대는 빗줄기처럼 심장이 뛰고 있었다. 나는 선교 사역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파악해가고 있었다. 그것은 전도와 구제사역이 조화를 이루어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달린을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섬의 원주민들과 판잣집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생각하는 같았다. “기도합시다. 달린과 그리고 젊은 YWAM 청년(YWAMer)들은 고개를 숙이고 폭우로 그들이 가진 작은 것마저도 잃어버린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만일 먹을 것과 의복과 건축자재 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YWAMer들이 집을 다시 짓는 것을 도울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많은 것을 옮기려면 배가 필요했다. 꿈같은 계획이 아닌가! 현재로서는 우리가 있는 것이란 없었다. 답답한 일이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무엇인가가 영혼에 심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같이 사람들이 아프다고 느끼는 부분에 도움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 너무나 자주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보살핀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있어 실패한다. 나는 클레오 태풍으로 인해 영혼에 심겨진 씨가 파종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궁금했다.

     

     

     

    본격적인 시작을 위한 열쇠

     

    스프링필드의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인 토머스 짐머만과 만나게 것은 한편으로 기쁜 소식이었다. 그는 바하마 섬에서의 실험적인 전도에 대해 들은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초교파적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교파 안에서 내가 일할 있는 자리를 추천했다. 좋은 자리였고 봉급도 많은 간부급 자리였지만 제안을 들었을 가슴은 덜컹 내려앉는 같았다. ‘하나님, 정말 당신의 말씀입니까? 나는 재빨리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교파에서 모인 젊은이들을 파도처럼 선교를 위해 파송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는 거리가 것이었다. “총회장님, 새로운 세대가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것과는 아주 다른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는 말에 동의는 했지만 그도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앞으로는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없게 것이고 나는 이상 하나님의 성회의 목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올바른 일을 했다는 확신이 있었다.

     

     

    YWAM으로 돌아와 다시 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얼마 유방암 말기 선고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산드라 고모에 대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해 총회장을 방문한 이후로 약간 균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우리들뿐이었다. 그것은 달린과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결혼한지도 4 반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동안 매해 여름마다 수백 명의 단기 선교 자원자는 있었으나 전임 봉사자들은 달린과 외에 겨우 8명뿐이었다. 나는 사역이 완전히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할 있는 무엇인가를 보고 싶었다. 정말 꿈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라는 확실한 어떤 증거를 보기 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뉴질랜드가 꿈의 발사대가 줄은 알지 못했다.

     

     

    나와 스탭 사람을 실은 수상비행기는 수양회 장소인 뉴질랜드의 그레이트 베리어